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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문화재
2.우리 마을에도 있을까요?(장승)

나주 운흥사 석장승
(국가민속문화재 제12호)
나주 운흥사 석장승
(국가민속문화재 제12호)

예전에는 마을 입구에서 제일 처음으로 반기는 장승을 쉽게 만날 수 있었어요. 바로 그 마을에 들어오는 나쁜 전염병을 막기 위한 수호신이기 때문이죠. 마을 사람들은 장승을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일된 마을 질서를 유지하기도 했어요. 그러면 우리는 장승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장승이나 장승제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신앙과 세계관도 알 수 있고, 민중들의 미의식과 생활 속에서 이어지는 예술전통을 배울 수 있어요.
운흥사 터 석장승은 전남 나주시 다도면 운흥사에 있으며 국가민속문화재 제12호에요. 몸통에 ‘상원주장군’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할아버지 장승은 네모난 돌기둥 모양 그대로의 머리에 둥글고 툭 튀어나온 눈망울과 큼직한 코를 가졌어요. 빙긋이 웃는 합죽이 입가에는 이빨이 새겨 있지만 도드라진 광대뼈와 부드러운 눈썹으로 험악하기보다 보는 사람이 슬며시 미소를 짓게 만들죠. 할머니 장승의 몸통에는 ‘하원당장군’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데 튀어나올 듯 동그란 눈과 주름, 허옇게 드러낸 이, 재미있는 광대뼈는 무언가 재미나서 못 참겠다는 듯,
목을 움츠리고 웃는 모습이지요. 할머니 장승 뒤에는 강희 58년, 그러니까 숙종 45년(1719)에 세웠다는 글귀가 새겨 있어서 비슷한 유형의 석장승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해요.
또 이 장승의 키는 2.1m랍니다. 남장사 석장승은 경북 상주시 남장사에 있으며 경상북도 지정 민속문화재 제33호에요. ‘하원당장군’이라는 명문이 새겨 있으며 머릿돌이 뾰족하고 눈이 올라가 강한 인상을 주지요.
충북 음성군 원남면 오미마을에 있는 3기의 석장승이 있는데, 이중 멀리서 얼핏 보아 관음보살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생긴 장승 1호는 미륵모습을 닮은 장승으로 훤칠한 키에 길쭉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마을의 화합을 이룬 장승 모시기

마을 사람들은 대체로 음력 정월 열 나흗날 ‘장승제’를 지내요.
어떻게 지내는지 한번 볼까요? 장승 나무를 메고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들어오면 마을 사람들이 길마중을 나와 풍물을 치며 온 마을 잔치 분위기로 몰아가죠.
아낙네들은 솥을 걸고 음식을 장만하며 할아버지, 할머니, 아이들 할 것 없이 구경들을 나오고 동네 개들도 제멋에 이리저리 뛰어 다녀요.
새 장승을 깎을 때는 이전 장승이 본보기가 되고 눈썰미와 손재주를 가진 사람이 중심이 되어 깎기 시작해요. 그렇기 때문에 한 마을의 장승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요. 장승이 다 만들어 지면 장승의 밑동이 흔들리지 않게 흙을 다지고 돌을 주변에 둘러쌓는데, 이때 남녀 장승의 눈이 서로 마주치도록 각별히 신경을 쓴답니다.

석장승
(경상북도 시도
민속문화재 제33호)

제멋대로 생긴 장승과 단정한 불상

툭 튀어 나온 퉁방울 눈, 크게 벌린 입속에 드러난 이빨, 뭉툭한 코, 눈 밑에 튀어 나온 광대뼈. 이는 바로 당시를 살아온 할아버지, 할머니의 얼굴 그리고 바램이었어요. 나쁜 악귀를 쫓아버리기 위해선 눈을 부릅떠 겁을 주어야 했고 그런 과장된 표현에도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전형적인 우리 민족의 얼굴이기 때문이지요.
귀족층이 믿었던 불상의 얼굴과는 대조적이지요. 입가에 미소를 띠되 얼굴 근육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입만 웃고 있으며 하나도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에는 인간의 감정이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어요.
반면 장승은 모든 인간의 감정이 숨김없이 솔직하게 나타나 온갖 사회적 모순과 자연적 피해가 많았던 시기에 민중의 아픔을 절절히 느끼는 가장 인간다운 모습을 느낄 수 있답니다. 감정이 절제된 은근한 미소보다는 이빨을 드러내놓고 웃는 호탕한 웃음이 훨씬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요.
잘생긴 연예인의 얼굴에 팔 다리가 달린 장승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색하지요?


영남·호남·충청의 문화 그리고 장승의 생김새

호남지역은 넓은 평야가 펼쳐져 풍부한 쌀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여유와 넉넉함이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그래서 운흥사 터의 석장승에서도 진도 아리랑의 해학(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말이나 행동)과 유머가 표정에 나타나죠. 백두대간과 바다로 막혀 있는 영남지역은 험악한 산지와 척박한 토양으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려고 하는 욕구가 강했어요. 따라서 말투에서도 느껴지는 것처럼 억세고 거친 면이 있지요. 이러한 느낌은 장승을 만드는 데도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어요. 상주 남장사 장승의 화가 난듯 치솟은 눈매와 시원하게 둥굴려진 코, 꽉 다문 입에서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얼굴 좌우가 대칭을 이루지 않아서 더욱 강한 인상을 준답니다.
한편, 서울과 가깝고 양반이 많이 살고 있어 감정의 표현이 자유롭지 못한 충청지역에서는 장승의 표현에서도 그런 분위기를 그대로 볼 수 있어요. 음성군 원남면 오미 마을의 장승은 음각으로 조각하여 표현이 약하며 감정을 쉽게 읽을 수 없지요. 이렇듯 같은 장승이라도 지역마다 또 마을마다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답니다.


왜 장승은 무서운 표정을 하고 있을까요?

장승은 나무로 만들거나, 혹은 돌에 조각을 하기도 합니다. 특히 돌로 만든 장승은 전라도지방에 많이 남아 있는데, 이를 벅수라고도 부릅니다. 이러한 장승은 크게 세 가지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첫째가 마을수호신, 둘째는 경계표식, 셋째는 이정표의 역할을 말합니다. 장승의 밑에 보면 방향표시가 되어 있고 십리라는 거리가 기록되어 있는데, 요즘의 방향표시판 역할을 한 것입니다. 조선 말기에는 십리마다 장승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이 돌면 약도 흔하지 않아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특히 천연두가 많이 퍼져 있었는데, 이를 마마귀신이라고 합니다. 병을 가져다주는 것은 나쁜 귀신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마귀신은 중국에서부터 건너온다고 생각해서 우리나라에는 신의주부터 십리마다 무섭게 생긴 장승을 세워 마마귀신을 쫓아내고자 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