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 메뉴 바로가기 하단 사이트 정보 바로가기


민속문화재
1.옛날 사람들의 종교생활은 어떠했을까?
(국수당, 산신제, 장승, 서낭당, 기우제, 풍어제, 안택, 세시풍속)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였나?

우리나라의 주거지는 큰 산을 의지하여 앞으로 하천을 두고 추운 북서풍을 막고 적을 방어하는 방패로 이용했습니다. 조상들은 산이나 내를 단순한 자연으로 생각지 않고 생명이 있어 살아 약동하는 힘의 원천으로 생각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은 땅의 정기에 있다고 보아 인물은 산천의 큰 정기를 타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집터를 잡고 산천을 숭배하는 사상을 가졌습니다.

마을에는 당산이라 하여 마을을 보살펴 주는 신을 모시는데 마을에 따라 국수당이나 산신당·서낭당·장승·각시당·풍어당 등 지역에 맞는 신을 모셨습니다. 국수당은 산 정상에 있고 산신당은 대개 산 중턱에 마련되어 있으며 산 아랫자락에는 서낭당이 있어 부정을 금하는 성역을 이루었습니다. 이들 신앙은 하늘을 숭배하는 천신 신앙으로 천상의 신이 내려오는 곳에서 하늘 신을 맞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는 장승과 솟대, 수구막이가 있어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질병·재앙을 막았습니다. 이런 모습은 삼한의 제천의식,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가야 건국의 수로왕 신화, 신라 건국의 박혁거세 신화, 고려·조선의 기우제에서 보이며 조상들이 해온 공동 신앙이었습니다. 또한 매년 주기로 엮어지는 우주의 대운행에 맞추어 때에 맞는 행사를 함으로써 질병도 막고 건강과 체력도 단련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가정에서는 서민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안택(고사와 비스하나 규모가 큼)과 고사 등 집안의 안정과 평안, 풍년, 자손의 번성, 장수와 복, 소원성취, 가족이 무병하고 나쁜 일이 없길 집을 지키는 신들께 치성을 드립니다. ‘고사’는 가을걷이가 끝난 뒤에 해마다 지내 복을 빌고 천지신명의 도우심에 대한 감사의 보답으로 지냈습니다. ‘안택’은 나쁜 귀신을 막기 위하여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고 이사하였을 때, 집안의 불안, 질병, 재화를 퇴치하고자 지냈습니다. 집에서 행해지는 가정신앙은 일단 청결한 곳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외래자의 출입을 금하고 제주는 2∼3일 전부터 몸을 청결히 하고 술·고기와 같은 것을 먹지 않으며 외출도 금하여 부정을 가까이 하지 않는 등 심신을 깨끗하게 준비합니다. 제물은 제일 좋고 처음 난 것을 신에게 먼저 드린 뒤에 받아쓰는 것이 본래의 뜻이기에 치성을 드려 신의 뜻을 기쁘게 하고자 했습니다. 이 제사는 밤중 또는 새벽녘에 대문을 닫아걸고 아무도 모르게 거행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들은 집을 나갈 때는 항상 조상단지나 조상 위패에 인사드리고 집을 나가서도(여행 중에도) 항상 함께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드리고 떠났으며 고갯마루에 장승이나 서낭에도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처럼 산이나 들, 부엌, 안방 어디서나 삶의 모두가 신앙이었습니다. 자손번성을 위해 빌었고, 부적을 만들어 집안에 붙이거나 지니고 다녀 귀신이 두려워 물러가게 하였고, 과일 나무에 과일이 처음 열리면 큰 바구니를 가지고 가서 많이 딴 것처럼 여럿이 같이 들고 내려온다던가 하여 풍년 들기를 기원했습니다.

각 신앙물들이 한 역활은 무엇일까요?


국수당

국수당은 대개가 마을의 배후 높은 산꼭대기에 위치하여 그 마을을 수호해 주는 신으로 전국에 걸쳐 신앙된 전통적인 마을 신앙의 한 갈래이던 것이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중서부 해안지역에 아직도 전승되고 있습니다. 국수당은 국사봉·국수봉·국시봉 등의 지명으로 남아 있는데, 당은 산봉우리에 있습니다. 당의 형태는 국수당신을 직접 신체로 봉안하지는 않고 국수봉 꼭대기에 돌멩이를 쌓아 두른 돌담 안에 관목 신수가 있는 형태로 하늘 신을 최초로 지상에 모신 형태입니다. 제의는 음력 정월 초이튿날 제를 지냅니다.
아침부터 선출된 제관이 목욕을 하고 몸을 청결하게 한 다음 밤 12시쯤 국수당에 올라가 밥을 지어 바치고 정화수를 떠올린 다음 재배합니다. 그리고 각 집의 호주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농사와 어업이 잘 되고 병 없이 건강한 한 해가 되게 해달라는 내용의 기원을 하고 나서 소지를 올립니다.


산신제

산신이란 산을 맡아서 지키는 신으로 대개 신선상이나 호랑이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산신에 제사하는 일을 산제(山祭), 혹은 산신제라고 일컫는데 마을의 배후 산중턱이나 산기슭에 당을 마련해 놓고 매년 정초에 날을 잡아 제사를 올리며 풍요와 건강, 행운을 기원합니다. 산신당은 당집이 없이 바위 밑에 단을 두거나 나무만 있는 경우, 당집과 나무가 있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산신을 숭배한 것은 퍽 오래된 일로써 백제는 산의 신에게 제사했고 신라에서는 봉래산·방장산·영주산과 동쪽에 토함산, 서쪽에 계룡산, 북쪽에 태백산, 중앙에 부악으로 정하여 조정에서 제사를 드리고 국가의 태평을 빌었다고 합니다.
고려 때에는 덕적·송악·백악·목멱산의 산신에게 매년 봄·가을에 무당과 여악으로 하여금 제사하였고 조선조에 들어 와서도 산신제의 유풍은 여전히 계속되었는데 삼각산·송악산·태백산·지리산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장승

장승은 마을 어귀부근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잡귀, 질병, 재앙, 콜레라, 작은 마마 같이 사망률이 높고 의술로 치료가 잘 안 되는 전염병 등을 몰고 오는 역신을 겁주어 쫓아내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대개 솟대와 더불어 세웠는데, 몸 기둥에 ‘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이라 명문을 쓰고 돌장승의 명칭은 지방에 따라 영남과 호남에서는 ‘벅수’, 제주도에서는 ‘돌하르방’, ‘우석목(偶石木)’이라 불립니다.
장승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고 돌로 만드는 것은 드뭅니다. 마을에 차츰 장승의 역할이 많아져 방위가 허한 곳에 세워 방위를 지키게 하고, 마을의 약한 지맥을 다스리기 위하여 명문을 새겨 세웠고, 사찰입구에 세워 경내의 청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도 세웠으며 성문으로 나쁜 전염병이나 재앙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웠는데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이와 같은 장승입니다. 또한 장승은 이정표로 10리나 30리마다 세워 동서남북중 어느 방향으로 몇 리가 떨어졌고 이웃지명이 무엇인가를 기록해 두어 길을 안내하는 안내판 구실도 했습니다.

제주도의돌하르방
제주도의 돌하르방

서낭당

서낭당은 외부로부터 들어와 그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질병·액·재앙·호환들을 인력으로 막아낼 수 없을 때, 마을 입구, 산기슭 등의 허한 지점에 설치하고 서낭신을 봉안하여 신앙함으로써 그들이 사는 마을을 수호하였습니다.
이외에 농어업의 기풍, 상업의 흥성, 병의 치료, 살의 제거, 길에서의 안전 등의 소망을 성취시키 위한 목적으로 서낭당에서 ‘액매기’를 하였습니다.

서낭당
서낭당

기우제

기우제는 가뭄이 오래 지속되어 농작물이 다 타들어 갈 때에 나라와 민간에서 비오기를 기원하여 지내는 제사입니다. 우리나라는 아득한 옛날 삼국시대부터 조정은 물론, 지방관청·민간을 막론하고 용왕신이나 천신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기우제를 지내왔습니다. 옛날에는 가뭄이 심하면 임금이 정치를 잘못한 천벌이라 하여 왕 스스로가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제사를 드렸으며 식음을 폐하고 거처를 초가에 옮겼으며 모든 죄인을 석방하기도 하였습니다. 민간에서는 명산의 봉우리나 큰 냇가에 제단을 만들고 그 일대를 신역(神域)으로 정하여 부정한 사람의 통행을 금하였고 마을 전체의 공동 행사로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주는 마을의 가장 연장자, 혹은 마을의 장, 지방 관원의 장이 되었으며 제물로는 닭, 돼지머리, 술, 과일, 떡, 포 등을 올렸고 어떤 지방에서는 무녀의 가무까지도 곁들였습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명산에 피를 뿌려 더럽힘으로써 하늘이 이를 씻어 달라는 뜻에서라도 비를 내려달라고 개를 잡아 그 피를 산봉우리에 흘려 놓는 일도 있었습니다. 옛날 책에 보면 서울에서는 기우제례로 종묘사직과 흥인문·숭례문·돈의문·숙정문의 4대문에서 제사했고, 오룡제라 해서 동서남북 사교와 중앙인 종각 앞에서 거행하기도 했으며 모화관·경회루·춘당대·선농단 등지에서도 기우제를 올렸습니다.


풍어제

풍어제는 바다를 접해 사는 어촌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마을신앙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긴 해안선과 많은 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바다를 끼고 산 어촌사람들은 먼 옛날부터 바다에서 배를 이용해 어패류를 비롯한 조기잡이·멸치잡이 등을 해왔습니다. 바다에서의 고기잡이는 생명을 걸고 먹고 살기 위한 하나의 절실한 수단이었습니다. 풍어제는 바로 이와 같은 해안지방이나 도서지방의 어촌에서 풍어와 마을의 평안과 운수, 그리고 해상의 안전을 비는 마을 제사입니다.

풍어제
풍어제
(어촌지역의 마을신앙)

안택

가정신앙의 제주는 어머니들로 가족이 사는 집안을 집밖의 부정하고 잡스러운 잡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죽음의 사자가 들어오지 않도록 방어하는 것으로 울타리 안을 성과 같이 튼튼하게 지키는 의식행사로 각 신이 맡고 있는 역할을 제대로 하여 가족에게 축복이 있길 기원하는 행사입니다.
그래서 새로 집을 짓고 이사를 하면 안택굿을 하고 정월과 10월에 고사를 지내 그들을 위하는 신앙이었습니다.
가장 높은 자리의 성주신은 마루에 모시는데 가정의 길흉화복을 관장합니다.

주거지의 안전을 주관하는 터줏신은 지신이라고도 하는데 터주는 집터를 맡아보며 집안의 액운을 걷어 주고 재복을 갖다 주는 신으로 집의 뒤뜰 장독대 옆에 ‘터주가리’로 만들어 모십니다. ‘터주가리’는 서너 되 들이의 옹기나 질그릇 단지에 벼를 담고 뚜껑을 덮은 다음 그 위에 짚으로 엮어서 원추형 모양을 만들어 덮은 것입니다.
부엌의 불을 주관하고 음식물을 관장하는 신이 조왕신입니다. 이곳에 정화수 한 주발을 매일 아침 어머니가 갈아 올리며 신앙의례를 했습니다. 광에 재산과 복을 주관하는 업신, 탈을 일으키는 측신, 가축을 주관하는 구신, 조상단지나 신주단지라하여 농사 잘되길 기원하는 조상신, 자식들의 수태·생산·발육을 주관하는 삼신, 장독대에 있으면서 간장과 된장을 보살펴 주는 철융신, 우물이 마르지 않게 하는 우물신, 광에 있으면서 재복을 주는 업신, 우마의 번식을 돌보아 주는 우마신, 대문간에 수문신이 있어서 나쁜 액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문신 등,
집안의 곳곳에 신들이 있어 ‘고사’와 ‘안택’ 때에 그 신들을 위하고 달래는 굿을 마루에서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가정신앙은 집에 있는 신들을 위하는 신앙으로 울타리와 대문을 경계로 집터를 포함한 건물과 가족을 포함하는데, 가택의 요소마다 신이 있어서 집안을 보살펴 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세시풍속

세시풍속은 살아가면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생활 속에서 관습적으로 되풀이하는 민속으로 매년 그 때가 되면 반복합니다. 세시풍속이 우리 생활 속에 정착된 시기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지역 사람들이 공감을 주는 특정한 사건이 벌어졌다던가, 여건이 조성되어 공감을 주었다던가 하는 것과 그 풍습을 전승하여야 할 필요성이 부여되어 계속 실행해 오면서 형성되었다든지 해서 관습화되었습니다. 세시풍속은 향토문화 현상으로 나타나거나, 민족단위로 나타나는 생활 현상입니다. 그러기에 한 번 토착화되면 생활양식이나 의식에 큰 변화가 없는 한 오래 지속되기 마련입니다. 태음력에 의존한 우리의 세시풍속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이룩된 것으로 세시풍속의 형성에 자연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 세시풍속은 그 지역에 거주하는 자연환경과 풍토의 영향아래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서 계절의 변화를 잘 활용하고 현명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생업에 따라 계절을 의식하게 되고, 일의 완급이 있게 되는 것으로 그대로 반영되어 생산양식에 맞는 세시풍속을 이루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