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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문화재
1.옛날 사람들도 바지 저고리를 입었나요? (덕온공주당의, 전 박장군 창옷, 구례 손씨 저고리)

사극을 보면 옛날 옷들이 많이 나오지요? 옛날 사람들이 그런 옷을 입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무덤 속에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의 생활 모습, 그리고 입던 옷들을 넣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고구려 고분벽화 같은 무덤 속의 그림이나 옛날의 책들 그리고 무덤 속에서 나오는 옷들을 보고 옛날 사람들이 입던 옷을 알 수 있어요. 옷은 잘 썩기 때문에 무덤 속에서 오랜 세월동안 있지 못해요. 그래서 우리가 주로 볼 수 있는 실물의 옷들은 조선시대의 옷이지요. 이렇게 무덤 속에서 나오는 옷들 중 보존가치가 높은 것은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됩니다. 우리 옷은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입어온 옷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전통성이 담겨있어요.
우리는 옷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지형과 기후의 특징, 각 시대의 생활 모습과 미적 감정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체성 등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 옛날 옷들은 국가민속문화재로 매우 중요해요. 그럼 옛날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살펴볼까요?


덕온공주 당의

조선 순조의 셋째공주인 덕온이 입던 당의에요.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 민속박물관에 있어요. 덕온공주 당의는 자주색 비단의 겉감과 분홍색 명주의 안감으로 되어 있고 자주색 겉고름과 안고름이 달려있어요. 깃을 보세요. 끝이 둥글죠. 이렇게 둥근 깃을 당코깃이라고 해요.
겨드랑이 아래서부터 끝까지 양옆이 트여 있고 도련은 반달모양으로 부드럽게 둥근 선을 이루어 매우 아름다워요. 겉감에는 壽(수)자와 福(복)자가 한자로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금실을 넣어서 직물을 짜는 것을 말해요.

덕온공주 당의
(국가민속문화재
제1호)

당의는 텔레비전의 사극을 보면 쉽게 볼 수 있지요? 당의는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조선시대 양반여성들은 예복으로 입었어요.

당의에 영향을 준 옷들이 당나라의 영향을 받은 명을 거쳐 전해졌기 때문에 이 옷의 명칭에도 ‘당’자를 붙여 당의라 부르게 된 것이라 보고 있어요. 당의의 아랫도련선과 기와집의 처마 선을 비교해 보세요. 둘 다 날아갈 듯 한 곡선이 무척 아름답죠. 당의는 그 길이가 무릎 정도인데 겨드랑이 양옆의 트임은 처음에는 직선이었는데 점점 곡선으로 파여지게 되었고 아랫도련도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청원 전 박장군 창옷

이 옷은 현재의 남자 두루마기와 무척 비슷하죠? 이 옷은 청원 전 박장군 묘에서 나온 창옷이에요. 16세기에 입었던 옷인데 무명으로 만들어졌고 옆에는 70cm의 트임이 있어요. 창옷은 바지,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입었던 겉옷이에요. 창옷은 큰 창옷과 작은 창옷이 있는데 일반 백성이 큰 창옷을 입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대요. 그래서 일반 백성들은 외출할 때나 행사 때 작은 창옷을 입었어요. 큰 창옷은 양옆과 뒷자락이 터져있고 소매가 매우 넓고 흰모시나 옥색모시로 만들어서 홑겹이에요. 작은 창옷은 소매와 통이 좁고 길이가 길어요.
그렇다면 전 박장군 창옷은 큰 창옷일까요? 작은 창옷일까요?
맞아요. 작은 창옷이에요. 작은 창옷은 조선시대에 일반 백성들은 외출복으로 양반들은 관복의 밑에 받쳐 입었던 옷이에요.

청원 전(傳) 박장군 묘
출토유물
(국가민속문화재
제117호)

구례 손씨 저고리

다음 저고리는 길이도 길고 품도 넓어 무척 편해 보이지요?
이 저고리는 충북 청원 구례 손씨(1576∼1626)의 묘에서 나온 옷으로 현재 충북대 박물관에 있어요. 깃을 보세요. 앞의 당의와는 다른 모양이지요? 이렇게 끝이 네모난 깃을 목판깃이라고 해요. 이 옷은 남색 명주에 솜을 넣었어요. 소매 끝에는 흰색 명주로 한삼이 대어져 있고 흰색으로 옷고름을 달았어요. 지금의 한복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저고리 길이도 더욱 길고 소매도 직선이네요. 옷고름도 지금과는 달리 무척 짧고 작아요.
어때요? 우리 옛날 옷들을 보니 지금과는 다른 점들이 많이 있지요? 왜 지금과는 다른 모습인지, 우리 옷은 어떤 특징이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해요.

청원 구례손씨 묘
출토유물
(국가민속문화재
제116호)

우리 옷의 기본은 바지·저고리

고구려 고분 벽화를 보면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여자도 겉옷이나 치마 밑에 바지를 입고 있어요. 고구려·백제·신라의 옷은 거의 같았다고 하니 우리는 상고시대부터 바지·저고리를 기본으로 입었다고 볼 수 있죠. 바지·저고리는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 한복의 원형이 되었고, 여자 바지는 치마 속에 입는 속옷으로 발전하였어요. 임금님과 양반들도 중국식 왕복이나 관복 밑에 평상복인 바지·저고리를 입었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바지, 저고리를 입게 되었을까요?

따뜻한 아열대나 더운 열대지역에서는 어떤 옷을 입었을까요? 이집트 피라미드벽화에 나오는 옷처럼 허리에만 둘러 입는 옷을 입었어요. 아프리카나 인도, 지중해 연안에서는 하나의 긴 천을 자르거나 바느질하지 않고 허리를 감아 어깨 위에 걸치거나 머리를 감싸서 입는 옷을 입었고요. 아메리카지역에서는 짐승의 가죽이나 옷감의 중앙에 머리가 들어갈 만한 구멍을 뚫고 그 구멍으로 머리를 넣어 어깨에 걸쳐 입는 옷을 입었어요.
세계 각 지역의 옷은 왜 이렇게 다르게 발달한 걸까요? 옷은 그 나라의 기후·풍토와 같은 자연조건과 종교·예술·정치·경제·사상·철학 같은 사회조건의 영향을 받아 발달하고 변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와 같이 여름에는 매우 덥고·비가 많이 오며, 겨울에는 매우 춥고 비가 적게 오는 지역에서는 여름에 더울 때는 쉽게 앞을 열어 놓을 수 있고, 겨울에는 온 몸을 감싸서 추위로부터 체온을 유지하는 옷으로 발달한 거지요. 우리의 바지·저고리는 이러한 자연조건 속에서 생겨난 옷이에요.


우리 옷은 왜 품이 넉넉할까요?

남자의 바지나 여자의 고쟁이(여자의 속옷의 한 가지. 가랑이 통은 넓음)는 별나게 품이 넓어요.
우리 옷은 왜 이렇게 품이 넉넉할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어요. 먼저, 우리 옷의 풍성함은 몸이 옷의 구속을 받지 않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에 무척 편리하며 체격의 결점을 어느 정도 감추어 주기 때문에 좋아요. 또한 우리 특유의 집구조인 온돌하고도 관련이 있어요. 우리는 온돌생활로 서양과는 달리 바닥에 앉지요. 따라서 방바닥에 여유 있게 앉으려면 옷폭이 넓어야 해요. 이렇게 폭이 넓으면 옷과 피부사이에 공기층이 형성되어 보온효과도 높아진데요. 또 한 가지 이유는 물자가 풍부하지 못해서 아이가 클 때마다 새 옷을 지어 입힐 수가 없었으므로 한 번 옷을 지어 입을 때 넉넉히 지어 오랫동안 입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옷을 물려 입는 전통이 있어서, 아버지의 옷을 형님이, 그 옷을 다시 둘째·셋째가 물려 입기 위해서는 옷이 넉넉해야겠지요. 그런데 이런 옷물림은 반드시 가난 때문은 아니었답니다. 가족공동체의 동질성을 강조하기 위한 조상들의 슬기라고 보는 것이 옳겠지요. 뿐만 아니라, 옛날에는 옷을 세탁할 때는 옷을 다시 뜯어서 세탁하였습니다. 세탁한 후에는 다시 꿰매서 입었던 것이죠. 그러므로 꿰맬 수 있는 시접의 여유가 많이 필요했기 때문에 옷의 품이 넉넉한 것이었요.


지금의 한복과 옛날의 한복은 같은 모양이었을까요?

무용총이나 쌍용총의 벽화를 보세요.
저고리의 길이가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길지요? 그래서 허리에 끈을 매었요.
저고리는 누구나 입었던 옷으로 처음에는 남자·여자 모두 길이가 길고 허리에 끈을 매었어요. 그런데 언제부터 저고리가 짧아지고 고름을 매게 되었을까요?
고려 말에 저고리의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했어요. 저고리가 허리위로 올라오니 허리띠가 필요 없어지고 대신 앞에 매듭단추나 작고 실용적인 고름을 달기 시작한 거지요.
남자저고리는 길이가 허리선에 닿고 옷고름을 달았고 별다른 장식이 없어요.

그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어요.
그러나 여자 저고리는 조선시대에 와서 무척 많은 변화가 생겼어요.
처음에는 등길이가 남자처럼 허리 밑까지 왔다가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저고리 길이가 점점 짧아졌어요. 심한 경우는 남자 저고리 길이의 3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것도 있었어요. 그러다 1930년대쯤에는 오늘날의 저고리 길이와 비슷해졌어요.
이러한 저고리 길이의 변화는 오늘날 나타나는 유행의 반복과 비슷하지요?
이러한 변화는 그 시대의 사회조건의 변화와 여성들의 미의식이 변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지요.

신윤복의 미인도
(조선시대의 의복)

우리 옛날 사람들은 자기 옷의 색깔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을까요?

“사람에게는 상하가 있으며, 지위에는 존비가 있고, 이름도 같지 않으며 의복 또한 다르다. 풍속이 점점 천박해져 백성들은 다투어 사치를 좇고, 다만 이방의 것을 진기하다 하여 숭상하고 도리어 토산품을 속되고 천하다 하여 싫어하니, 분수를 지나쳐 예의를 거스르고 풍속이 쇠락해가고 있다.
감히 구장에 따라 써 밝힐 것을 명하노니, 만약 고의로 이를 범하면 상형이 있을 것이다.”

무용총의 무용도
(고구려시대의 의복)

삼국사기에 나와 있는 신라 흥덕왕 9년 복식금제령의 앞부분이에요. 우리는 지금 입고 싶은 옷의 종류와 색깔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삼국시대부터 복식금제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복식금제라는 것은 신분에 따라 옷감의 종류·색깔, 옷에 쓰는 금·은·주옥들을 제한했던 제도에요.
위의 글에는 사치를 금하기 위해서 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지배층에서 자신들의 신분과 지위를 확보하고, 신분의 높고 낮음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이 더 컸어요.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황색·백색·홍색·자색·회색·옥색·녹색들을 입지 못하게 했어요. 황색은 중국 황제의 색이므로, 백색은 서방의 색이며 또한 상복과 다른 것이 없어 망국의 징조가 있는 색이고, 홍색은 중국 천자의 색인 황색과 가까워서, 자색은 우리나라 임금의 색이어서, 회색·옥색도 길조가 못되고 망국의 징조가 있는 색이라고 금하였어요. 녹색은 궁궐에서 즐겨 입는 옷인데 민간에서도 입어 상하의 구별이 없다고 입지 못하게 했다나요.
지금 우리는 너무 행복하죠? 입고 싶은 색깔의 옷을 마음대로 입을 수 있으니 말이에요. 옛날의 우리 옷은 자연에 무척 가까운 옷이었어요. 옷감도 무명이나 삼베, 모시 등 자연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들었고 옷의 염색도 치자나 쪽같은 식물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