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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1.삼국시대의 불교유적을 찾아서(황룡사지, 익산미륵사지)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전해진 불교는 우리 민족문화를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으며, 당시 나라의 질서를 완성해 나가던 국왕에게 큰 힘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여러 집단의 다양하던 사상을 불교로 통일함으로써 국왕은 한결 쉽게 자신의 권력 아래 나라를 통일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런 가운데 불교는 국왕의 보호를 받으며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발전했던 불교의 모습을 아직도 남아 있는 웅장한 절터를 통하여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황룡사터
경주 황룡사지
(사적 제6호)

경주에 남아있는 황룡사 터는 동서 288m, 남북 281m의 대규모로서 당초 늪지를 매립하여 절터를 닦았다고 합니다. 이 절은 신라 553년(진흥왕 14)부터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진흥왕은 본래 반월성 근처에 궁궐을 지으려 하였는데, 그 자리에 황룡이 나타나자 이를 기이하게 여겨 절을 세우도록 하였답니다.
이런 사연을 가진 황룡사는 645년(선덕여왕 14) 9층목탑을 마지막으로 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이는 4대 왕 93년간의 긴 세월과 정성이 들어간 대규모 건축물이었습니다. 이 절에는 진흥왕 때 솔거가 그렸다는 벽화가 유명합니다.
이 벽화의 소나무를 새들이 실제 나무로 알고 날아와 부딪쳤다는 유명한 일화가 남아 있지요.

그리고 이 황룡사의 중요한 건축물로는 바로 9층목탑을 들 수 있습니다. 백제의 유명한 장인인 아비지가 지휘하여 완성한 이 탑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돌로 만든 석탑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목탑입니다. 마치 9층짜리 거대한 한식 건물을 보고 있는 듯하지만 1238년에 몽고의 침략으로 불타고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신라의 역대 왕들은 이곳의 불사에 친히 참석하였고, 외국의 사신들도 들러 불상에 예배하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삼국과 통일신라시대에 있어 황룡사는 신라의 가장 중요시되는 사찰로서 국왕과 귀족들의 후원을 받아가며 크게 번성하였던 절이었습니다.

황룡사 복원모형도

미륵사터
익산 미륵사지
(사적 제150호)

미륵사터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의 큰 절이 있었던 곳으로, 이 절은 백제 무왕(600~641)이 고구려와 신라의 침략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왕이 왕비와 함께 이 지역을 돌아보다가 이곳 용화산 아래 연못에 이르렀을 때, 미륵부처님이 나타나자 왕비의 부탁으로 이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는데 바로 그 절이 ‘미륵사’입니다.

익산 미륵사지는 3개의 금당(대웅전)과 3개의 탑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중 서탑만이 남아 있습니다. 사람들이 보통 미륵사지석탑이라고 부르는 이 탑은 지금은 전체 9층 중 6개 층만이 남아 있고 그나마도 일부가 파손된 채로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3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모진 비바람과 전란을 겪은 역사의 흔적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들어 이 서탑을 본 떠 원래의 모습을 되살린 동탑을 새롭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최근에 끝난 발굴조사의 결과 이 절이 5만 평에 이르는 대규모였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절의 크기나 발견된 유물들이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걸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미륵사지는 왕실의 후원을 받아가면서 오랜 동안 중요시되었던 절로 생각됩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복원 동탑
(사적 제15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