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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3.삼국통일 영웅들의 능, 묘(경주 무열왕릉, 문무대왕릉, 김유신묘)

신라의 서울이었던 경주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약 1,000년간의 역사의 흔적들이 아주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왕과 귀족들의 무덤은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보존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답니다. 그 여러 무덤들 중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세 분의 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어 신라의 찬란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태종무열왕의 능은 경주 교외(도시의 변두리)의 선도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큰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은 원형봉토분입니다.
다른 신라의 왕릉들이 그 주인을 확실히 알 만한 증거가 별로 없는 데 비하여, 경주 무열왕릉 무덤 앞에 경주 무열왕릉비라는 비석의 일부가 남아 있어 어렵지 않게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능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주 무열왕릉
(사적 제20호)

태종무열왕 김춘추는 성골 바로 아래 단계의 왕족인 진골 출신으로서, 앞선 진덕여왕이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에 이미 고구려와 당, 일본 등지를 오가며 국력이 커지고 있던 신라가 삼국간의 경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도록 기초를 닦았습니다. 특히 당의 세력을 끌어들여 신라를 지원하도록 한 것이 김춘추의 공이었지요. 그는 당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던 김유신의 누이와 결혼함으로써 신라의 왕이 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 지 7년만인 660년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통일의 주도권을 신라가 쥐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태종무열왕과 함께 삼국통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유신입니다. 그는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받들어 신라의 삼국통일이 완성되는 데 큰 공을 세웠지요. 아울러 백제 멸망 후에 봉기한 백제의 부흥군을 물리치고, 고구려 멸망 후 우리 땅을 노리던 당의 세력을 몰아내면서 한강 이북 고구려 땅의 일부나마 회복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김유신의 무덤은 송화산 동쪽 기슭 아늑한 소나무숲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름 30m나 되는 둥근 무덤을 잘 조각된 쥐·소·호랑이·토끼 등의 12지신 상으로 보호석을 만들어 두르고 있으며, 돌난간까지 만들어 무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12지신 상은 얼굴은 동물이고 몸은 사람이며 모두 무기를 들고 있으며, 그 조각이 어느 왕릉의 장식에 뒤지지 않는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덤의 크기나 조각 등에서 볼 때, 김유신의 당시 정치적 지위나 그가 신라 발전에 세운 공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국통일을 완성한 문무왕의 능에 대하여는 아주 독특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 때문에 사람들은 지금도 바다에 솟아있는 바위 덩이 하나에 왕의 무덤이 만들어 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토함산 뒤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대종천을 이루고 그 물줄기가 동해로 흘러드는 감포 앞 바다 봉길리 해수욕장이 들어선 해안에서 서면 바다 쪽으로 약 200m 떨어진 곳에 바다 경치를 돋우는 아담한 바위섬이 눈에 들어옵니다. 문무왕의 화장된 유골을 뿌렸거나 혹은 수중릉으로 알려진 대왕암입니다. 멀리서 보는 대왕암은 평범한 바위섬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한 가운데가 못처럼 패어 있고 둘레에 자연암석이 기둥 모양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모습입니다. 못 안의 물은 돌을 약간 덮을 정도이며, 거센 파도에 아랑곳없이 항상 맑고 잔잔히 흐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트인 십자형의 수로를 통하여 동쪽으로 들어온 물이 서쪽으로 난 수로의 턱을 천천히 넘어 다시 바다로 흘러나갑니다. 못 안의 돌 밑에 문무왕의 유골 장치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증명된 사실이 아닙니다. 문무왕릉을 만드는 것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삼국사기》의 기록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이때까지 우리 강토는 삼국으로 나누어져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제 삼국이 하나로 통합돼 한 나라가 되었으니 민생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평화롭게 살게 되었다. 그러나 동해로 침입하여 재물을 노략질하는 왜구가 걱정이다. 내가 죽은 뒤에 용이 되어 불법을 받들고 나라의 평화를 지킬 터이니 나의 유해를 동해에 장사 지내라……” 이러한 기록 때문에 사람들은 대왕암을 문무왕의 물속 무덤으로 오해하고 있나봅니다. 이 대왕암이 문무왕의 무덤이든 장례가 치러진 곳이든 문무왕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은 전설로 전하는 사실일 뿐, 과학적인 조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현재 역사연구자들은 대개 이곳 대왕암이 문무왕의 화장한 유골을 바다에 뿌린 장례지로 인정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