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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2.무덤의 주인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무령왕릉(비), 공주 송산리 고분군)

공주 송산리 고분군
(사적 제13호)

공주, 부여, 경주 등 옛 역사의 도시에 가면 지금도 그 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관심 있게 보는 것이 옛 왕들의 무덤이지요. 우선 크고 화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곳의 무덤들은 대개는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답니다. 1,000년이 넘게 세월이 흘렀고, 그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기록이나 물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경주지역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은 어린 아이 머리 크기만 한 돌들로 관을 보호하고 흙으로 덮어 마감한 그 모양 때문에 무덤을 온통 파헤치기 전에는 그 안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지금 현재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개방된 왕릉이 천마총 이외에는 거의 없습니다.


전설이나《삼국사기》기록으로 추정해 보면 신라시대 옛 왕들의 무덤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지만 주인이 누구인지는 의문입니다. 이에 비해서 백제의 옛 서울이었던 공주·부여 지역에는 왕들의 무덤이 여럿 남아 있고, 대부분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무덤들이 대개 출입구가 있는 굴 모양의 것들이라서 그 입구만 발견하면 무덤 안으로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무덤의 안을 쉽게 볼 수는 있지만, 무덤 안의 주인공이나 그와 함께 묻힌 그 시대의 소중한 물건들은 모두 누군가가 훔쳐가고 지금은 빈 무덤만 남아 있는 실정입니다. 신라에 의해 멸망한 역사에다가, 우리 문화재를 송두리째 빼앗아간 일제의 약탈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빈껍데기뿐인 다른 무덤과는 달리 그 안의 옛 물건들이 고스란히 발견되고, 더구나 그 주인이 누군지를 밝혀주는 증거가 명백히 남아 있는 유일한 백제왕의 무덤이 지난 1971년에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것이 곧 무령왕릉이지요. 무령왕은 백제의 25대 임금으로서 501~523년의 기간 왕위에 있었던 임금님입니다. 백제는 이때에 고구려의 침략으로 처음 서울이었던 한강지역을 빼앗기고 금강지역의 공주로 서울을 옮긴 어려운 지경에 있었습니다.

무령왕은 이 어려움을 이겨내며 백제를 다시 일으키는 노력을 열심히 하였던 위대한 임금이었지요. 이 무덤은 2,900점이 넘는 백제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고 무려 12종류의 유물이 국보로 지정된 1,500년이나 된 오랜 무덤이랍니다.
그런데 그 유물 중 국보로 지정된 ‘지석’이라는 유물은 이 무덤의 주인이 무령왕임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넓죽한 돌판 앞뒤에는 왕의 죽음과 그 장례에 관한 간단한 한자 기록과 무덤을 만들기 위해 땅의 신으로부터 이 땅을 사들인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삼국시대 무덤 중에서 그 주인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무덤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무덤의 가치는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곳에서 우리는 백제의 찬란했던 발전과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왕릉이 있는 지역을 송산리 고분군이라고 부르는데, 주변에는 무령왕릉 이외에도 주인을 잘 알 수는 없지만 백제왕의 무덤이 분명한 여러 개의 옛 무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녕왕릉 내부
(사적 제13호)

지석이란?

지석(誌石)은 국보 제163호로 왕과 왕비의 2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왕, 왕비의 간단한 신상기록과 사망 및 장례 연대가 기록되어 있고, 뒷면은 매지권(買地卷)으로 이 땅을 지신으로부터 구입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상징적으로 토지매입에 사용된 오수전이라는 동전도 발견되었으며 이 지석의 발견으로 《삼국사기》의 연대 기록에 대한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