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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6.사도세자와 수원화성(수원화성)
언제, 왜 만들었을까요?

조선의 임금 정조는 한양의 남쪽에서 100리나 떨어진 곳인 수원에
성을 쌓아 새 도시를 건설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왜 한양과 100리나 멀리 떨어진 수원에 큰 성을 쌓은 것일까요? 정조의 할아버지(영조)는 신하들의 꾐에 속아서 정조의 아버니(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굶겨 죽입니다. 정조는 이처럼 비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 세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화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수원 화성의 팔달문
(수원 화성사적 제3호,
수원 팔달문 보물 제402호)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당시 화성을 쌓는 일을 수원에 한양에 비길 만한 도시를 건설하는 큰 일이었으며, 국왕 주도하에 관료·백성까지 모든 계층사람들이 참여하여, 조선의 국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조선 후기 최대의 건설 사업이었던 화성성역에서는 성곽을 쌓는 일과 함께 국왕이 사는 행궁이 팔달산 아래 웅장하게 세워지고, 도로 · 수문 · 다리 등 여러 가지 도시기반시설이 마련되었습니다. 더욱이 실용성과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해서 아름답고도 기능적인 구조가 되도록 하였지요. 그리하여 성 주변의 인공적인 외관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곳곳에 수원팔경, 수원춘팔경, 추팔경 등 수원의 명승지를 만들었습니다. 경기도 도청 소재지, 농업 연구중심도시, 교통·상업중심지로서의 수원의 위상은 200년 전 신도시를 세우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정조 임금은 당시 대학자들이 공부하던 전통적인 지식에 최신의 외국지식을 보태어 세심하게
성의 모습을 구성했습니다. 그는 적의 침입으로부터 성안을 잘 수비하기 위해 치성과 옹성(큰
성문 밖의 작은 성) 같은 성곽 구조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동안 여러 성을 쌓아본 경험을 이용
합니다. 또한 정약용으로 하여금 거중기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성을 쌓알 때에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지 않고, 전부 임금을 주어 일꾼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하더록 하였습니다. 벽돌과 석돌은
모두 표준화하여 대량생산하였고 합니다. 수원화성이 지금으로부터 약 200년 전에, 놀랍게도
단지 2년여만에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당시의 뛰어날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