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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2.백제의 흔적을 찾아서 Ⅰ(풍납토성, 몽촌토성, 공산성,부소산성)

여러분은 백제의 수도가 여러 번 바뀌었었다는 사실을 아세요? 요즘에는 수도를 바꾸는 일이 거의 없지만, 옛날에는 국방상의 이유나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수도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수도였던 자리마다 여러 성곽이나 유물들이 발견되는데, 한성시대(수도 - 지금의 서울)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웅진시대(수도 - 지금의 공주)의 공주 공산성, 사비시대(수도 - 지금의 부여)의 부소산성이 바로 그런 곳이지요. 그러면 지금부터 백제의 흔적을 담은 여러 성들에 대해 살펴봅시다.



서울 풍납동 토성

서울 풍납동 토성은 사적 제11호로, 한강 유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토성입니다. 서울 몽촌토성과 함께 한강변에 남아 있는 백제 초기의 유적으로 모촌토성과 불과 70m 떨어져있고, 석촌동 백제고분과도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원래 풍납토성은 둘레가 4km에 달하는 큰 규모의 토성이었는데 1925년에 있었던 큰 홍수로 일부가 파괴되어 현재는 약 2.7km가 남아 있습니다. 1997년 이후 동쪽 성벽을 발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성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되어 백제 보다 앞서는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 몽촌토성

서울 몽촌토성은 한강지류에 해당하고 표고(바다의 면이나 어떤 지점을 정하여 수직으로 잰 일정한 지대의 높이) 44.8m의 야산을 중심으로 자연 구릉을 이용하여 그 위에 진흙을 쌓아 성벽을 만들었습니다.
특히 북벽의 단을 이룬 곳에는 나무 울타리를 세웠고, 성의 바깥쪽으로 해자(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를 만들었습니다. 이 성은 북쪽 방향으로부터 저이 쳐들어오는 거을 방어하는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성 내부에서 집터 · 독무덥 · 저장구덩이 등과 함께 백제토기 · 무기 낚싯바늘 · 돌절구 등 각종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시대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기도 한답니다.

서울 몽촌토성
(사적제297호)

공주 공산성

공주 공산성은 사적 제12호로 금강 주변의 낮은 산에 계곡을 둘러싼 포곡식 산성입니다. 이 산성은 원래 토성이었던 것을 임진왜란 직후에 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동, 서쪽에 보조 산성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은 백제의 웅진시대는 물론이고, 조선시대까지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남아 있었습니다. 백제가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했으며 나당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822년에 일어났던 김헌차의 난이 이곳에서 평정되었고, 1623녀에는 이괄의 난 때 인조가 피난했던 역사적 일화가 얽혀있기도 합니다. 정말 긴 세월동안에 많은 사연을 간직한 산성이구요.

공주 공산성
(사적 제12호)

백마강의 슬픈 전설, 부여 부소산성

어린이 여러분, 백제시대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아시나요? 사비(부여)가 나당 연합군에 의해서 공격당하고, 멸망할 위기까지 갔을 때의 일입니다. 삼천이나 되던 궁녀들은 높은 바위에서 백마강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삼천궁녀가 떨어진, 슬픈 전설이 깃든 그곳이 바로 낙화암(원래는 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라고 해서 타사암이라 불렸으나 삼천궁녀의 전설로 이 같은 이름을 얻었습니다)입니다. 이 낙화암이 있는 바로 그 성이 사비를 보호하던 부소산성입니다.

부여 부소산성
(사적 제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