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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물
1.움집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요?(암사동선사유적지)

우리는 글자가 없어 전해지는 기록도 없고, 찍어노은 사진도 없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건 바로 지금 남아있는 유물과 유적을 통해서 알 수 있어요. 우리는 여러 유적에서 나온 유물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인간 사회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도 알 수 있어요.


서울 암사동 유적지

암사동 유적은 한강에서 약 700m 떨어진 야트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으며 발견당시 많은 유물과 함께 마을을 이루던 집터들이 발굴되었습니다.
30여 채의 집터에서 빗살무늬토기, 탄화된 도토리와 호두, 강자갈로 만든 도끼·화살촉·그물추·괭이·돌낫·보습·갈돌·갈판 등의 석기들이 발견되었고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사적 제 267호로 지정되었어요.

서울 암사동 유적
(사적 제267호)

신석기시대 집터는 왜 강이나 바다 가까이 있을까요?

사냥, 고기잡이, 식물채집 등의 방법으로 먹을것을 구했던 신석기 시대에 고기잡이를 하려면 당연히 강이나 바다 가까이 살아야겠지요.어떤 학자는 신석기시대에는 농사를 짓기 시작한 최 농경사회여서 곡물과 함께 열량이 높은 도토리도 주식으로 먹고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 도토리는 매우 떫어서 물에 우려내야지만 먹을 수 있었지요. 당시 석기로서는 우물을 팔 수 없었기 때문에 물 가까이 살았던 거예요.


움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신석기시대의 움집
신석기시대의
생활모습 상상도

암사동에서 나온 집터는 평면모양이 원형에 가까운 네모꼴이 대부분이에요.
모래흙을 70~100㎝ 정도 깊이 파고 움을 만든 다음, 움푹 들어간 집터 안에는 돌을 돌려 만든 화덕이 하나씩 있었고 나들이 문은 주로 햇볕이 잘 드는 남쪽에 있었어요. 움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먼저 움의 안쪽 둘레에 기둥을 4~7개 세우고 도리를 얹었어요. 그 위에 서까래를 비스듬히 기대어 땅에 닿도록 하고 강가에 많이 자라는 억새풀을 엮어 지붕을 덮어 움집을 만들었어요. 이렇게 만들어진 움집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어요. 지금의 집 모습과 많이 다르죠. 집크기는 5평에서 10평 정도 되고 4∼5명의 한 가족이 살기에 알맞은 크기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