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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3.우리 문화의 원형, 굿!(강릉단오굿, 은산별신굿)

누가 아플 때나 죽었을 때 하는 굿을 본 적이 있나요? 굿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굿이라고 하면 대개 화려한 옷과 방울, 펄쩍펄쩍 뛰는 모습이 생각나고 그것을 굿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굿을 미신이라고 생각하고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요. 그러나 굿에는 기록에서 찾기 어려운 우리 민족의 신앙과 세계관, 인생관이 녹아 있고, 굿에 사용되는 춤, 연극, 무가, 제의도구 등은 우리 문화의 기본적인 요소를 가르쳐줘요. 굿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어요. 병자를 위해 하는 작은 굿도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마을 문제나 불안을 해결하려고 지내는 마을 굿도 있고, 강릉단오굿처럼 삼한시대의 제천의식을 반영한 지역 차원의 대동굿도 있어요. 여기서는 지역 대동굿인 강릉단오굿, 마을 굿인 은산별신굿에 대한 특징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해요.


강릉단오굿

강릉단오굿은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식 국 중 대회인 영고, 무천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전통과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 드물게 남은 대동굿이기 때문에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신화의 틀이 그대로 나타나 있어서 우리나라 향토신제 중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합니다.
그 근원설화를 볼까요? 옛날 강릉에 살고 있는 정씨 집에는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이 있었어요. 하루는 정씨의 꿈에 대관령 서낭신이 나타났어요.
“내가 장가를 가야겠으니 딸을 주시오” 정씨는 서낭신 따위에게 귀한 딸을 줄 수 없다고 한마디로 거절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정씨 집 딸이 마루에 앉아 있을 때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서 아가씨를 업고 달아나 버렸어요. 서낭신이 처녀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으려고 호랑이를 보냈던 거예요. 딸을 잃은 정씨 집에서는 야단이 나서 대관령 서낭당으로 찾아갔어요. 가보니 처녀는 서낭과 함께 서 있는데, 이미 죽어서 혼이 없고 몸만 비석처럼 굳어서 서 있었어요.

강릉단오제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

강릉단오굿의 순서는 이 이야기의 차례를 따라서 진행되지요. 호랑이가 아가씨를 업어 가서 대관령 서낭과 결혼한 4월 14일은 신을 모셔 오는 날로, 강릉단오굿은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되요. 5월 단오에 한다고 하지만 시작은 음력 3월 20일 신에게 드릴 술을 담그는 것부터예요. 결혼식 손님에게 줄 술을 담그면서 잔치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죠. 굿은 부정 굿을 시작으로 마지막에 신간(신이 깃들여 있는 장대)·화개 등 굿에 사용했던 물품을 불사르는 5월 6일까지 거의 50일 정도가 걸리죠. 본격적인 놀이와 행사는 5월 1일부터 시작되는데요, 이날에는 단오굿, 관노가면극을 중심으로 한 그네, 씨름, 줄다리기, 윷놀이, 궁도 등 민속놀이와 여러 가지 기념행사가 열려요. 워낙 큰 행사이다 보니 기획하고 준비해서 치르는 과정에 지역 주민들 모두가 참여하게 되요. 그러면서 공통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의식 형성이 이루어지고, 지역발전과 단합을 이루어내게 되지요. 이렇듯 굿판이 다양하고 큰데다가 참여자가 많기 때문에 아주 큰 장소가 필요하지요. 최근에는 대중화되고, 대부분의 행사를 한꺼번에 치르게 되면서, 남대천이 흐르는 넓은 백사장에서 하게 되었어요.


은산별신굿

은산별신굿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하지요? 옛날 은산 마을에 큰 병이 돌았어요. 이 병에는 어떤 약도 듣지 않고 젊은 사람들만 많이 죽어 나갔어요.
이집 저집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던 어느 날 밤, 마을 어르신 꿈에 한 장군이 하얀 말을 타고 나타나서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아주 오래 전 이 마을에서 백제를 지키다 억울하게 죽은 장군이오. 나라가 없어진 뒤에 어느 누구도 나와 부하들을 묻어주지 않아 영혼이 떠돌고 있소. 마을에 도는 큰 병을 내가 없애줄 터이니 우리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시오”
꿈에서 깬 어르신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장군이 말한 곳으로 가 보았어요.
거기엔 오래되어 보이는 뼈가 잔뜩 널려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뼈들을 잘 묻고 그들의 영혼을 위해 굿을 했어요.
그랬더니 병이 사라지고 마을은 다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대요.

은산별신제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

이 제사가 바로 오늘날 별신제에요. 별신은 죽은 장병을 위령(慰靈)한다는 뜻이에요. 이 이야기를 보면 원래 백제 땅이었던 은산이 백제의 흥망에서 겪었을 아픔이 스며 있어요. 왜 은산에서 별신굿이 열렸을까요? 은산은 예로부터 부여, 공주, 청양, 예산, 서천으로 가는 길이 모두 통하는 교통의 중심지였어요. 교통이 발달한 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어서 큰 장이 설 수 있지요. 장을 확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이 찾는 구경거리를 펼치면 좋겠지요. 그래서 볼거리가 많은 별신굿이 은산 지방에 생겨나게 되었어요. 이런 굿을 난장에서 여는 난장 굿이라고도 해요.
그럼 이 별신굿이 어떻게 열렸는지 알아볼까요? 별신을 하려면 먼저 별신굿기성회를 만들어야 해요. 별신기성회는 별신굿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위원회로 마을 유지로 구성되어 있어요. 기성회부터 모여 이렇게 굿을 준비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맞추는 공동의 노력을 통해, 서로서로가 일체감을 확인하고 단합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은산별신굿은 마을 굿중에서도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고, 마을통합 기능이 뚜렷해서 국가무형문화재 제9호로 지정하게 되었어요.
은산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보름에 산신제를 지내고 별신제는 3년에 한 번씩 지내는데, 옛날에는 보름 동안 놀았으나 요즈음 8일 정도 걸려 행사를 해요. 정월 초에 한 해가 시작될 무렵 사람들은 겨울을 보내고 새 봄을 맞을 채비를 마을 굿의 형태로 지내는 거예요. 장터 북쪽으로 높이 70∼80m의 당산이 있고 남쪽 기슭에 신당이 있는데, 주신(主神)인 산신(山神)부부가 모셔져 있고, 동쪽 벽에는 복신장군(福信將軍), 서쪽 벽에는 토진대사(土進大師)가 봉안되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