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 메뉴 바로가기 하단 사이트 정보 바로가기


무형문화재
2.들에서 노는 한 판 탈놀음(오광대놀이, 야유)

영남지방의 탈놀이는 들놀음(야류) 또는 오광대라 불렀다. 낙동강을 가운데 두고 동쪽인 부산 일대(수영·동래)에서는 들놀음(야류)이라 부르고, 서쪽인 경남 일원(가산·고성·통영)에서는 오광대라 불렀습니다. 들놀음과 오광대는 주로 정월대보름의 연중행사로 정초 각 지역의 지신밟기, 동제(마을제사) 등과 함께 하였습니다. 특히 이 탈놀이들은 장터, 마을 절 마당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큰 마당에서 마을 구성원 전체의 대동놀이 차원으로 전해 내려왔습니다. 이들 들놀음과 오광대는 다른 지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덧배기춤을 특징으로 하며 반주는 사물(쇠·장구·북·징)을 중심으로 한 타악기를 주로 사용합니다. 각 놀이들은 서로 유사한 과장들로 구성되는데, 말뚝이가 나와서 양반을 놀리는 〈양반장〉, 무엇이든 잡아먹어 버리는 영노가 등장하는 〈영노과장〉, 불구의 몸을 딛고 일어서 해방의 춤을 추는 〈문둥이과장〉, 가정 내 갈등을 그린 〈영감·할미과장〉, 파계한 중을 조롱하는 〈승무과장〉 그리고 〈사자과장〉과 의식무인 〈오방신장무〉가 나오기도 합니다. 이들 과장은 지역 특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들놀음과 오광대는 대부분 1930년대까지 이어지다가 소멸되었으나 1960년대에 다시 부흥되어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 야 류

‘야류’(또는 야유)는 우리말로 ‘들놀음’이라 하며 현지의 일반인들도 거의 ‘들놀음’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탈놀이는 경상좌도에 속하는 부산의 동래·수영·부산진 등지에 전승되어 온 것인데, 부산진의 들놀음은 없어져 버렸고 지금은 동래와 수영의 두 들놀음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오늘에 전하고 있습니다. 놀이의 내용도 탈놀이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화려한 길놀이가 앞에 있고 탈놀이 다음에는 다시 대동줄다리기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놀이판이 넓은 놀이였습니다.


동래야류

부산광역시 동래에 전해 오는 민속탈춤입니다. 해마다 음력 정월보름을 전후하여 열리며 그해에 풍년과 평온을 비는 놀이로, 정월 초순에 각 마을에서 조직된 농악대가 집집마다 돌면서 지신을 밟고 걸립(꽹과리를 치며 축복을 해 주고 돈이나 쌀을 구걸하는 일)을 하여 야류 공연에 쓰일 비용을 마련하면서 시작됩니다. 탈놀이는 보름날 마을 단위의 줄다리기가 끝난 후 벌어지는데 해질 무렵의 길놀이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어 놀이판에서 학춤·곱사등이춤 등의 갖가지 춤판이 벌어집니다. 이때 구경꾼은 누구나 탈을 쓰고 재주를 자랑할 수 있습니다. 군무가 끝나는 새벽 한시쯤 본격적인 탈놀음이 시작됩니다. 탈놀음은 제 1마당(문둥이마당), 제 2마당(양반마당), 제 3마당(비비새라는 영노마당), 제 4마당(할미마당)으로 짜여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되는 가면은 대개 바가지로 만듭니다.

동래야류
(국가무형문화재
제18호)

수영야류

수영야류는 역시 경상도에 이어져 온 들놀음의 하나입니다.
이 탈놀이는 1930년대까지도 길놀이와 함께 수영 고을의 세시놀이로 행해졌던 것인데 점차 사라져 가다가 1960년대에 들어 다시 복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탈을 만드는 재료로는 바가지·마분지·대소쿠리가 주로 쓰이며, 창호지를 바르고 색을 칠하는 공정이 다른 지역의 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영야류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

◑ 오 광 대

'경상남도 낙동강 서쪽 연안에 폭넓게 전승된 탈놀이를 오광대 또는 오광대놀이라 합니다. 낙동강 상류의 초계 밤마리 장터의 대광대패들에 의하여 각 지방에 퍼져 나간 것으로, 1900년경에는 의령·진주·산청·거제·창원·고성·통영·김해·가산 등으로 전파되었습니다. 오광대라는 이름은 '다섯 광대가 나와 오방의 잡귀를 물리치는 놀이'라는 뜻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다섯 마당으로 이루어진 놀이'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현재 연희본이 채록되어 있는 것은 '진주오광대', '마산오광대', '통영오광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등인데, 그 가운데서 통영·가산·고성의 탈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통영오광대

이 지방에 전하는 오광대의 발자취에 대해서 몇 가지 설이 있습니다.
놀이를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는 1961년을 기준으로 70∼80년 전이라 하는가 하면 1900년경이라는 증언도 있습니다. 전래된 경로에 대해서는, 창원의 이군찬이라는 사람이 초계 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를 보고 이화선 등과 더불어 마산오광대를 놀았는데 나중에 이화선이 통영으로 이사를 오면서 추게 되었다는 설,
  1900년경에 이화선이 초계 밤마리에서 대광대패의 놀이를 보고 와서 전했다는 설, 통영 사람들이 마산에 가서 배워왔다는 설 등 의견이 구구합니다.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1958년에 장재봉·오정두가 만든 탈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탈은 바가지·나무·대나무 등으로 만들었으며 요즘은 바가지탈이 주를 이룹니다.

통영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
제6호)

가산오광대

가산은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의 마을 이름으로 진주에서 서남쪽으로 30리쯤 떨어진 해변에 위치한 약 50호의 작은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조선말까지 조창이 있었던 곳으로 3백 호 가량 들어선 시장이 섰다고 하며 오광대놀이도 놀았는데 그 이름을 ‘조창오광대’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탈은 두꺼운 마분지·창호지·대소쿠리·바가지 등으로 만드는데 총 28점입니다.

가산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
제73호)

고성오광대

조선 말기 고성읍에는 부유층인 북촌파 선비들이 따로 모여 살면서 오음육률을 즐겼고 가난한 선비나 서민층의 남촌파는 시조창이나 매구(농악)를 즐겼다 하는데, 1900년경 창원 태생으로 고성의 관속이었던 이순오가 사람들에게 탈놀이를 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조선 말기에 고성에는 이미 지방 관아의 하인들에 의한 탈놀이가 있었으며, 19세기 말에 남촌파 인사들이 마산오광대를 전수받아 오늘과 같은 고성오광대를 설립시켰고, 그 전파 경로는 통영을 거쳤으나 통영보다 마산과 비슷했으리라고 짐작할 뿐입니다.
조선말에 사용하던 탈은 목수인 김인찬이 만든 나무 탈이었는데 한일합방 뒤 나라를 빼앗긴 절망감에 바다에 띄워버렸습니다.
그 뒤에는 물에 불린 마분지를 이겨 만든 종이탈을 사용했습니다.

고성오광대
(국가무형문화재
제7호)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당시 홍성락·천세봉 옹이 만든 종이탈을 썼는데, 마분지를 풀로 이긴 것이라 쥐가 갉아 먹어 손상되고 보관이 어려워 1964년 이후에는 홍성락 옹이 만든 나무탈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요즘에는 허종복이 만든 종이탈, 바가지탈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