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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3.하늘과 땅, 인간을 연결하는 우주축(강릉 진또배기, 청주 용주사지 철당간)

마을 입구에서 긴 장대 끝에 앉혀진 나무오리를 본 적 있나요? 절에 들어가는 입구에서 돌로 만든 두 개의 기둥을 본 적 있나요? 앞의 것은 솟대라고 하고, 뒤의 것은 당간지주라고 해요. 당간 지주는 당(깃발)을 매다는 간(기둥)을 세우기 위해 만든 버팀돌인데, 세월이 지나면서 당간은 거의 없어지고 당간 지주만 남은 거지요. 당간 지주는 더러 본 사람이 있겠지만, 솟대는 아마도 본 사람이 드물 거예요. 요즘은 보기 어려워졌으니까요. 솟대와 당간은 선사시대부터 하늘에 대한 우리 민족의 믿음과 생각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자료예요. 지금 우리는 하늘을 향한 솟대를 보고 기록조차 없는 먼 옛날 우리 민족이 어떤 신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고, 절집 앞 당간을 보고 이 땅 밖에서 생겨나 들어온 불교가 솟대로 대표되는 토착신앙과 어떻게 융화되었는지 알 수 있지요. 이런 중요성에 비해 대접은 모자라서 당간은 국보와 보물로 각각 지정된 것이 있지만, 당간이 세워지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졌던 솟대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에는 우리나라 솟대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강릉 진또배기와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을 실었어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충청북도 청주에 가면 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철당간을 볼 수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철당간은 많은 상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런 경관을 안타깝게 여긴 시민들이 상가를 옮기고 넓은 광장을 만들어서, 지금은 청주시의 자랑이 되었어요.
만든 때는 962년(고려 광종 13)이고 만든 사람은 당대등 김희일 등 지방 호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 밖에도 글을 짓고, 글씨를 쓰거나 새긴 사람들의 이름과, 당시 관직 명칭 등을 통해 고려 초기 이 지방을 장악한 호족 이름이라든지,
지방 관리를 뭐라고 불렀나 하는 것 등과 같은 당시 사회상을 생생하게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용두사지 철당간은 당간 가운데 유일하게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것이지요.
당대등이라는 직책은 지금으로 치면 청주 시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김희일이라는 사람은 서울에서 내려온 관리가 아니고 이 지역의 큰 호족이었어요..
고려 초기 서울에서 관리가 오지 않고 지역 사람을 중심으로 행정이 이루어졌다는 말은, 당시 중앙 정부가 지방 세력을 압도할만한 충분한 힘이 없었다는 걸 알려 주지요.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실력자가 당간 건립을 직접 지시했다면 이 지역 사람들이 총동원되어 일에 매달렸겠지요. 그러면서 당대등은 자기 힘을 서울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큰 공사를 빌미삼아 지역 주민들을 자기 뜻대로 부리면서 세력을 키울 수 있었을 거예요. 용두사지 철당간에 기록된 글을 통해 곧바로 알게 된 이런 사실들은, 고려 초기 정치 사회적 상황을 현대 사람들이 파악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이에요.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국보 제41호)

용두사지 철당간은 원래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용두사지 철당간을 보면 지금은 위 10단이 없어져서 원래의 정확한 모양은 알 수가 없어요. 그렇지만 옛날 용두사지 철당간의 끝에는 용머리가 있었고, 거기 줄을 달아 깃발을 매달지 않았을까 생각되고 있어요. 깃발을 달아서 여기는 부처님이 계시는 신성한 곳이라는 걸 나타냈겠지요. 높이 걸린 깃발은 멀리서도 잘 보이고 위엄 있게 보이지요? 아마 그때도 이런 뜻에서 당간을 더 높이, 더 크게 지으려고 애썼을 거예요. 지금 우리는 당간이나 당간을 세웠던 당간지주의 크기·높이를 보고, 그 때 이 건축물을 세운 사람들의 미의식과 사회적 힘을 짐작할 수 있어요. 이 당간을 세울 때 단 수는 30단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20단만이 남아있어요. 전해오는 말로는 조선말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짓는다고 가져갔다고 해요. 지금 높이는 12.7m인데, 처음 세웠을 때 높이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한 단이 63cm니까, 몇 층짜리 건물높이쯤 되는지 계산해 볼까요?


강릉 강문동 진또배기

경포 호를 아세요? 경포 호는 물이 맑기로 강원도에서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름난 호수지요. 이 경포 호와 동해안 바닷가 사이에 강문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이 마을에 긴 목을 하고 호수 쪽을 바라보고 있는 멋진 솟대가 있는데, 여기서는 이 솟대를 진또배기라고 불러요. 5m 정도 되는 긴 장대 위에 세 갈래로 갈라진 나뭇가지를 가로로 얹고, 각 갈래마다 썩 잘 만든 나무오리를 앉혔는데, 이 모습이 우리나라 여러 솟대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해요.

강릉 강문동 진또배기

솟대에서, 새를 받치는 장대에는 무슨 뜻이 있나요?

옛날 사람들은 하늘과 땅, 땅속이 각각 다른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어요. 그리고 이 세 세계는 기둥으로 이어져 있어서 하늘에 있는 신이 이 기둥을 통해서 오르내린다고 생각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에 뿌리를 박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으며 자라는 나무를 이 세 가지 세계를 모두 이어주는 기둥으로 보고 신성하게 여겼는데, 나중에는 장대 역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신뿐만 아니라 신과 관계된 것을 모두 신성하게 여기게 되면서 장대 자체를 숭배하게 된 것이죠. 이런 전통은 기독교에서 십자가나, 불교에서 탑과 불상이 가지는 뜻과 다를 바가 없어요. 지금도 강릉 단오제를 비롯한 큰 굿에서는 의식에 쓰는 나무가 흔들리면, 신이 내린 것으로 생각하지요.


솟대 위에는 무슨 새가 앉아 있는 걸까요?

솟대 위에 앉아 있는 새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대부분 오리가 많아요. 왜 솟대 위에 오리를 앉힌 걸까요? 오리가 가진 어떤 특징 때문이었을까요? 옛날 사람들은 오리가 닭보다 크고 무거운 알을 많이 낳기 때문에 풍요를 가져오는 새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하늘과 땅·물을 오가며 잠수까지 하는 생활 모습을 보고, 오리는 지하 세계와 지상 세계를 모두 다닐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또, 먼 곳으로 여행하는 철새라는 성질은 인간 세상과 신이 사는 세계를 이어주는 심부름꾼으로 인식되었어요. 그밖에도 물새이기 때문에 불이 나는 것을 막아준다고 생각되기도 하지요. 이제 왜 솟대 위에 오리를 앉혔는지 아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