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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4.세계관과 지도(곤여만국전도, 대동여지도, 청구도)

조선 전기에 이미 세계지도와 조선지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중화사상의 영향으로 대부분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그 크기도 실제보다 과장되게 그려져 있었지요. 그 중 하나인 <혼일강리역대국지도> 에는 조선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지금껏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도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지도도 크게 변화되었습니다. 마테오리치에 의해 만들어진 서양식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 가 조선 후기인 1603년, 청나라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해졌습니다. <곤여만국전도> 는 경도와 위도를 사용하고 신대륙까지 표현된 지도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세계가 매우 넓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따라서 중국 중심의 세계관은 점차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도도 정상기와 김정호에 의해 보다 과학적이고 상세한 지도로 발달되었습니다.


곤여만국전도

명나라 말기에 중국으로 건너온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제작한 세계 지도로 1602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한 그는 중국에 선교사로 와서 서양 학술을 소개하고 황실의 요청으로 〈곤여만국전도〉(1602년)를 간행하였습니다. 〈곤여만국전도〉에는 중국이 지도의 중앙에 있으며, 지명은 한자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603년(선조36) 부경사로 베이징에 갔던 이광정과 권희가 이 지도를 가지고 돌아와 우리나라에 전래되었습니다.

곤여만국전도
(보물 제849호)

청구도와 대동여지도

과거의 지도는 주로 행정적,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조선 후기에는 산업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지도에 산맥과 하천, 포구, 도로망이 정밀하게 표시된 점이 특색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지도가 〈청구도〉와 〈대동여지도〉입니다.


〈청구도〉는 순조 34년에 제작된 대지도로 김정호의 작품입니다.
〈청구도〉는 건·곤 두 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청구도〉가 그 이전의 지도와 다른 점은 천문 관측에 의한 경선과 위선을 표시한 점이며, 서양의 기하학 원리를 이용하여 확대와 축소를 정확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청구도〉의 특징은 첫째, 전국도로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지도 중 가장 크며
둘째, 이전의 어느 지도보다 과학적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청구도
(보물 제1594호)

셋째 축척이 동일한 전국도로서는 당시 가장 정밀한 지도였으며, 넷째 군과 현의 경계를 확실히 하여 실용적이고, 다섯째 편람하기에 좋도록 책첩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동여지도

김정호는 〈청구도〉를 완성한 뒤 27년 만인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를 발간했습니다. 〈청구도〉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대동여지도〉는 일반인이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지도책의 형식에서 벗어나 지도첩 모양으로 하여 전체를 22첩으로 묶고 접어서 책처럼 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든지 뗐다 붙이기도 자유롭고, 접고 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2개 또는 3개씩 합쳐 볼 수도 있고, 또 전부를 펼치면 전도가 됩니다. 이것을 분첩절첩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특정한 일부 지역을 보고자 할 때는 그 부분을 펴 보면 되고, 접경지역은 서로 연결시키면 되며, 이것을 다시 풀어놓고 전부 이어서 맞추면 우리나라가 가득하게 하나로 펼쳐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대동여지도〉는 세로 30㎝, 가로 20㎝의 지도목판화 126개로 이루어져 있어 이를 순서대로 접합하면 세로 6m60㎝, 가로 3m에 달하는 거대한 모습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지도표가 작성되어 있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예를 들면 창고는 ‘■’라는 표시를 정해두고 표시 하였습니다.

대동여지도
(보물 제850호)

누가 만들었나요?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 선생님을 모두 알지요. 조선시대 후기에 살았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로 호는 고산자라고 합니다. 이 분은 우리나라 근대 지도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이 만든 〈대동여지도〉는 지금 우리가 보는 지도와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정확한 지도이지요. 지금처럼 항공촬영이나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는데도, 정확하게 우리나라 지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이 남다른 나라사랑 정신으로 노력을 쏟았기 때문입니다. 김정호 선생님이 살 당시에는 지도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또 대체로 지도가 군사적으로 쓰였으므로 외적이 이를 침략에 이용할 것을 우려하여 개인이 지도를 만드는 것은 엄하게 금지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일찍이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지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도 만들기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1800년 무렵에 태어난 김정호는 어린 시절부터 정확하고 실용적인 지도를 만들 꿈을 키웠습니다. 집을 떠나 10년 가까이 우리나라 곳곳을 직접 다니며 조사하여 1834년에 <청구도> 를 완성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근대적인 축척 지도책입니다. 그 분은 우리나라 전도인 〈청구도〉를 만든 데 이어 세계지도인 지구도를 만들었고, 계속해서 〈대동여지도〉·〈대동여지전도〉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지도들을 만들기 위해 선생님은 30년 동안이나 우리나라를 두루 답사하고, 백두산만 해도 17번이나 올랐다고 합니다. 특히 목판으로 만든 〈대동여지도〉는 오늘날의 지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정확한 지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