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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1.365일,12달,28수(경주 첨성대)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면 꼭 들리는 곳이 첨성대입니다. 첨성대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 달력을 만들던 기구,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 상징을 담은 건축물 등등입니다. 그 가운데 별을 관측하던 천문대라고 보는 사람이 제일 많답니다. 첨성대를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돌도 세어보고, 나침반도 가져와서 방위도 확인하고 신라 사람들이 보았던 청룡·백호·주작·현무 같은 우리 별자리를 안다면 첨성대를 통해서 우리 문화의 무한한 상상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경주 첨성대

첨성대는 별을 보기 위해 돌로 높게 쌓은 천문대입니다. 첨성대는 왕궁 가까이에 만들었는데 주변에 건물들이 많았으니 높게 대를 쌓아야 별을 관측하기 편하겠지요. 더구나 이곳에 신성하고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면 그 사회적 의미가 달랐을 거예요. 첨성대는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7년)때 만들었으며 동양에서 현재 남아있는 천문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제31호입니다. 첨성대는 높이가 약 9.1m로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밑에서 위로 좁아지는 병모양이지요. 어때요? 그 모습이 부드럽고 우아하지요? 각 부분을 좀 더 자세히 보면 기단, 몸체, 정자석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맨 아래 사각형 모양으로 2단 쌓은 것이 기단이고, 높이는 78cm이에요. 이 기단 위에 원주 모양으로 돌을 27단 쌓았어요. 몸체의 가장 밑단 지름은 약 4.93m이고, 가장 윗단은 약 2.85m이지요. 첨성대는 옆의 곡선이 매우 우아합니다. 이렇게 쌓기 위해서 27단의 원 둘레의 길이를 각 단마다 정확하게 측정하고 설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주 첨성대
(국보 제31호)

어때요? 신라인의 수학수준이 놀랍지 않으세요? 몸체 위의 정(井)자 모양 돌이 보이죠? 왜 둥글게 된 몸체 위를 정자 모양으로 마무리했을까요? 거기엔 이유가 있답니다. 정자석은 그 방향이 동서남북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어 방위를 알 수 있게 한 거죠. 이 정자석 안은 2.2m×2.2m×0.64m의 공간을 이루고 바닥에는 목판을 깔았어요. 이 목판 위에 눕거나 서서 관측을 하거나 천문관측기구를 놓고 관측을 했겠지요. 어떻게 정자석까지 올라갔을까요? 첨성대를 아무리 둘러봐도 창문 하나밖에 안보이네요. 이 창문이 문이에요. 이 문을 통해 사다리를 걸어놓고 올라갔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 13단부터는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거나 안으로 튀어나온 돌을 밟고 정자석 위까지 올라갔다고 합시다.


첨성대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첨성대의 생김새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재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몸체를 쌓은 돌을 하나하나 세어 볼까요? 모두 360여 개입니다. 이번엔 둥글게 쌓은 석단을 세어 볼까요? 모두 27단인데 위의 정자석까지 하면 28단이에요. 또 석단 가운데 문 아래까지 세어 보세요. 모두 12단이죠? 그럼 이 숫자들은 우연일까요? 이것은 1년 365일, 12달과 동양의 기본 별자리 28수와 그 숫자가 같아요. 그러니까 첨성대의 구조는 1년 12달과 365일과 별자리 28수 등 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죠. 그럼 첨성대는 단순히 모양만 상징적으로 표현한 걸까요? 실제 첨성대가 커다란 규표(해그림자를 재서 절기를 측정하게 하는 기구)로서 달력을 만들고 방위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능을 했어요. 첨성대의 문의 위치를 눈여겨보세요. 들어가는 문이면 아래에 나있는 것이 당연한데, 왜 불편을 무릅쓰고 가운데에 나 있을까요? 이 문은 정남향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춘분 추분이 되면 남중 때 햇빛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비친다고 해요. 또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어 춘·추분점과 동지·하지점을 잴 수 있어요. 이렇게 동지와 하지점, 춘·추분점을 알아내어 1년 24절기를 알아낼 수 있었어요. 꼭대기의 정자석은 동서남북의 방위를 정확히 가리켜요. 지금은 나침반이 있어 언제든지 방위를 정할 수 있지만 그 때는 표준이 되는 곳이 있어야 했어요. 무엇보다 정자석은 그 위에 혼천의를 놓고 쉽게 방위를 맞춰 관측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그럼 처음 방위는 어떻게 정했을까요? 1년 365일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했을까요? 이것은 ‘규표’로 잴 수 있습니다. 규표라는 것은 긴 막대기와 그 그림자를 잴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이것은 6학년 과학과목의 태양 고도 실험에서도 나오는데 그것이 규표의 원리입니다. 하루 동안의 그림자 길이를 재서 가장 짧을 때가 태양이 남중하는 때입니다. 그 쪽 방향이 바로 정남향이 되죠. 1년 동안 그림자를 재서 1년 중 남중할 때 그림자가 가장 짧을 때를 동지, 가장 길 때를 하지로 하여 1년이 24절기와 365일이라는 것을 알아낼 수 있어요. 이것은 직접 실험을 해 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어요. 어때요? 첨성대가 있는 경주로 빨리 가서 막대기와 나침반을 들고 확인해 보고 싶지 않으세요?


서울 관상감 관천대

보통 천문대하면 경주에 있는 첨성대만 떠올리는데, 지금 남아 있지는 않지만 고구려에도 천문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백제는 675년에 일본에 점성대라는 천문대를 세워 천체관측을 지도했다는 것으로 보아 백제에도 천문대가 세워졌을 거예요. 고려도 궁성인 만월대 안에 관천대가 있었고, 조선시대 관천대도 2개가 남아있어요. 그 중 하나인 창경궁 관천대는 보물 제851호로 1434년(세종16)에 경복궁 내 경회루 북쪽에 설치되었다가 옮겨졌어요. 그 높이가 약 6.3m, 세로 약 9.1m이며 가로 약 6.6m입니다. 지금 2층 건물 높이 정도겠죠. 또 하나는 구름재(운현)란 곳에 설치된 관천대로 높이가 약 3.8m, 세로 약 2.9m이며 가로 약3.8m로 경복궁 관천대의 반 정도 됩니다. 이것은 보물 제174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천대는 첨성대와 모양이 다르죠. 신화적인 상징을 담은 첨성대와는 달리 유교적 질서를 보여주듯 사각기둥이며 천문관측기구인 간의를 놓을 수 있게 위가 편평하게 되어 있습니다.

서울 관상감 관천대
(보물 제17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