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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6.500년간 써온 나라 일기(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을 세운 태조부터 순종까지 (1392∼1910년)의 정치, 외교, 군사, 제도, 법률, 경제, 산업, 교통, 통신, 사회, 풍속, 미술, 공예, 종교 등 각 부분의 역사적 사실을 연월일(年月日)순서로 그때그때 기록해 둔 책으로서 총 1893권 888책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역사기록물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
(국보 제151호)

어떻게 만들고 보관하여 왔을까요?

어느 시대나 그 때의 일들을 후세에 전하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일본, 베트남 등 여러 나라에서도 실록(역사를 기록한 책)이 쓰이고 전해져 내려오고는 있지만 대부분 왕에 의해 그 내용이 고쳐지고 변하여 사실적이지 못한데, 조선왕조실록은 그때마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해 두는 일에서부터 책을 만드는 작업까지 그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사관)을 두고 역사적인 사실이 그대로 쓰일 수 있도록 특별한 권리를 주어 보호했습니다. 임금이라 할지라도 기록해 둔 자료를 함부로 읽어볼 수 없도록 비밀을 보장하였으므로 어느 나라 실록보다 그 내용이 진실하고 사실 그대로 잘 써졌다는 점에서 훌륭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실록은 특별히 설치된 장소(사고-史庫) 4곳에 각각 1부씩 보관하였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르면서 사고에 있었던 책들이 없어지기도 하였지만 그때마다 다시 만들거나 고쳐서 20세기 초까지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 오대산의 사고에 각 1부씩 전하여 내려왔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존하기 위해 선조들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들에 의해 서울, 충주, 성주에 보관되었던 조선왕조실록 3부가 불타버리고, 전주에 보관되어 있던 것만 손흥록, 안의, 한춘에 의해 겨우 구할 수 있었다는 일화입니다. 그 세 사람은 왜군이 전라도에 들어오자,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겼다가 뱃길로 충청도 아산을 거쳐, 황해도 해주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왜군이 재차 침입하여, 이들은 또다시 자기 집 하인들과 함께 50바리(짐을 세는 단위)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실록을 싣고 강화도로 옮기고,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평안도 안주를 거쳐 묘향산으로 옮겨 보관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가 볼 수 있는 실록이 남아있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가치가 있을까요?

이 책은 역사를 사실적으로 쓴 세계 최대 규모의 역사기록물일 뿐 아니라 금속활자, 또는 목활자로 된 인쇄물이라는 점에서도 문화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도 주변의 나라들처럼 처음에는 2부씩 만들어서 두 곳에 보관하였는데 세종대왕 때부터는 2부씩 더 등사하는 사업을 벌여 새 사고를 짓고, 새로 등사한 실록들을 보관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실록이란 임금님이 정치한 내용을 날짜별로 자세히 기록한 글이므로 그 내용이 너무 많아 한두 본을 더 쓰는 일이 쉽지 않아서 세종대왕 때부터 활자 인쇄를 택하게 되었고 이것이 곧 조선시대의 활자 인쇄술을 발전시킨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거기다가 더 아름다운 글자와 모양으로 실록을 인쇄하려는 마음까지 생겨 새로운 금속활자를 개발하는데 힘썼으므로 활자 문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실록을 통해 지난 시대의 정치, 경제, 생활 모습 등 모든 분야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의 인쇄(활자)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유네스코에서도 1997년 10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하여, 온 세계가 함께 보존하고 전해주어야 할 유산으로 삼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