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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5.떡썰기와 글쓰기(한석봉증유여장서첩)

여러분은 어머니가 밤중에 등잔불을 끄고 떡을 썰면서 아들에게 글씨를 쓰라고 시켰던 이야기를 알고 있나요? 바로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지요. 옛날에는 글씨는 그 사람의 마음을 담고 있다고 해서 글씨를 어떻게 쓰는가를 매우 중요시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모든 글들은 직접 써야 했기 때문에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존경했지요. 다른 나라와 교역할 때에도 직접 쓴 글씨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석봉(한호)에 대하여

조선시대의 서예가 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손꼽히는 한석봉은 일찍이 어머니의 격려로 글씨에 힘을 기울여, 왕희지의 필법을 익혔으며 모든 글씨체에 뛰어났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의 힘으로 결국 스물다섯 살에 과거에 장원 급제하고 나라의 문서를 바른 글씨로 쓰는 사자관이란 벼슬을 얻은 그는 점차 그 명성이 높아져 갔습니다. 한석봉은 명에 가는 사신을 수행하거나 외국사신을 맞을 때 그 정묘한 글씨체로 명성을 떨쳤으며, 우리나라 서예계에서 김정희와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중국의 글씨체를 모방하던 풍조를 벗어나 독창적인 경지를 확립하여 석봉 나름대로 호쾌하고 강건한 서풍을 창시했습니다. 선조도 한석봉의 글씨를 특히 아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의 필적으로 《석봉서법》, 《석봉천자문》 등이 있고, 그가 쓴 비문 글씨로는 <허엽신도비>, <서경덕신도비>, <기자묘비 >, <행주승전비>, <선죽교비> 등이 있습니다.


한석봉의 서첩

조선 중기 명필 한석봉(1543~1605)의 노년 작품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실제로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던 <유금강산기> 친필본(직접 쓴 것)으로 추정되는 서첩이 공개됐습니다. 가로 20㎝, 세로 25.5㎝의 한지에 모두 12쪽으로 구성된 이 서첩은 해서와 행서로 단정하고도 부드럽게 씌어져 있는게 특징입니다.
전반부 여섯 쪽엔 1603년(선조 36) 8월에 금강산을 함께 여행한 한석봉과 최립의 금강산 감상이 실려 있습니다. 후반부 여섯 쪽은 이호민이 한석봉과 최립 일행의 금강산 여행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함께 가지 못했음을 애석해하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한석봉서첩
한석봉 서첩

한석봉의 작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 등 10여 점이 남아 있으며 이중 《한석봉증유여장서첩》이 보물 제1078호로 지정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