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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2.우리 인쇄술을 찾아서(무구정광대다라니경, 직지심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체요절이란?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국보 제126호)

옛날에는 탑에 사리를 넣었어요.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부처의 말씀을 적은 종이를 넣기도 했지요. 바로 그 경우가 1966년 불국사 석가탑 2층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에요.
국보 제126호인 이 다라니경은 발견 당시 중간 부분까지 많이 부식되어 있었고, 전체 모양은 폭 6.5∼6.7㎝, 전체 길이 약 62㎝의 목판으로 찍은 두루마리였어요. 김대성이 751년(신라 경덕왕 10)에 불국사 석가탑을 세우고 탑 속에 넣은 것으로 인쇄 시기는 750년경이에요.


직지심체요절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책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죠.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이라고 밝혀졌어요.
직지심체요절은 상하 2권 2책인데, 상권에는 인도와 중국의 유명한 스님들 이야기가 적혀있고 하권에는 스님들의 게송, 찬송, 법어, 문답, 서신들이 적혀있어요. ‘직지심체’는 ‘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는 ‘도를 깨닫는다.'는 문구를 줄여서 나타낸 것으로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직지 심체요절

활자는 없었는데 어떻게 목판 활자인지 금속 활자인지 알았을까요?

목판 활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판 위에 문자를 조각했기 때문에 나뭇결이 나타나지요. 또한 거의 다 가로획과 세로획이 겹치는 곳에 칼이 스쳐간 자국도 나타나구요. 먹물을 묻혀 찍어내니 주위에 먹물이 번져 있기도 하지요. 목활자를 만들 때는 활자 하나하나의 글자본을 써서 뒤집어 붙이고 새겨내기 때문에 같은 글자라도 글자모양이 다르고 글자 획의 굵기에 차이가 심하여 고르지 않아요. 오래 사용하면 글자 획이 닳아 부분적으로 결이 생겨 인쇄가 조잡해지지요. 반면에 금속활자는 주조한 다음 줄로 손질하기 때문에 글자 끝이 둥글둥글해요. 글자가 같을 때에는 모양과 크기가 같은 것을 알 수 있죠. 일정한 글자본으로 주형을 만들었기 때문에 글자모양이 같고 고르답니다.


고려에서 금속활자가 발달한 까닭은 무었일까요?

인쇄술이 세계 최고라는 중국이 고려보다 금속활자를 늦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국 한자로 활자 주형을 만들려면 수천 개를 만들어야 했어요. 게다가 같은 한자라도 글씨체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 그 수는 더 많이 필요했겠죠. 두 번째로는 활자 인쇄본이 목판 인쇄본보다 섬세하고 예술적인 면을 결코 잘 나타내지 못한다는 거예요. 더욱이 중국의 주요 인쇄물인 경전에서 예술성이 다른 점보다도 중요하게 고려되었기에 금속 활자의 발달이 더뎠던 거예요. 반면, 고려는 1126년과 1170년의 두 차례에 걸친 궁궐의 화재로 수만 권의 장서가 불탔어요. 그런데다가 그 무렵 송과 금의 끊임없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 송에서 책을 들여오는 것도 절망적이었죠.

결국 고려는 가지고 있던 기술로 필요한 책을 인쇄하는 길밖에 없었는데, 적은 부수를 여러 종류 인쇄하는 경우, 목판 인쇄로는 많은 경비와 시간이 필요해 그 해결이 어려웠죠. 더욱이 고려에는 목판이나 목활자를 만드는 데 알맞은 단단한 나무가 적었어요. 그러나 고려는 삼국의 청동 주조기술과 금속 세공기술의 전통을 계승했고, 1101년 송에서 배운 기술로 청동 전을 만들었으며, 청동 종들에 명문을 새긴 경험을 가지고 있었죠. 고려에서 목판이나 목활자 대신에 금속활자를 만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결국 이런 이유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본이 나오게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