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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6.도자기로 읽는 시대의 사상과 미의식(빗살무늬토기, 청자, 백자, 분청사기)

도자기는 현재 남아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 중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10만여 점 중에 3∼4만여 점이 토기와 도자기라고 하니 그 양을 짐작하시겠죠? 어디 그뿐인가요? 토기는 신석기시대부터, 도자기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남아 있잖아요? 이렇게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시대별 문화의 특징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유물로 도자기만 한 것도 없어요. 신석기시대하면 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엔 민무늬토기, 삼국시대에는 질그릇, 고려시대의 청자,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가 있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도자기는 사람들의 생활에 직접 쓰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해요. 그릇으로 쓰였으니 지체 높은 사람들이나 그렇지 못했던 사람이나 남녀노소 불문하고 썼을 것 아니에요? 그래서 도자기를 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그릇을 썼던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 보이게 되는 거예요. 도자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들이 많지요? 그럼 각 시대를 대표하는 우리 도자기를 알아볼까요?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에요. 오른쪽 사진은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높이가 40cm예요. 겉면에 빗살무늬를 찍거나 그어서 새겨 넣고 점, 선 따위 무늬를 섞어 만들었어요. 그릇 모양이 마치 팽이처럼 생겼죠?
밑이 길쭉하고 둥근 것이 다른 그릇하고 뚜렷하게 구별되고 있어요.
이 토기처럼 밑이 둥글고 길쭉한 토기는 중서부 지방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는 청천강이남 곧 한강·대동강 주변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죠.
빗살무늬토기는 밑이 둥글어서 똑바로 세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용했을까요?
이 토기는 땅에 파묻고 쓰던 그릇이에요. 지금의 항아리와 같이 수렵물이나 채집을 통해 얻어진 곡물들을 저장하는데 쓰였어요.

빗살무늬토기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이 병은 우리가 흔히 상감청자하면 떠올리는 것이에요. 이 매병은 어깨 부분이 커서 볼륨이 대단하죠? 그릇 선이 매우 날씬한 곡선을 그리면서도 밑 부분을 살짝 밖으로 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어요. 빗살무늬토기가 시골에 사시는 할머니 같다면 청자는 화사하게 차려입은 도시의 세련된 여인 같다고 할까요? 이 그릇을 사용했던 사람들이 굉장히 귀족스럽고 화려한 생활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도자기 표면의 학과 구름무늬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굉장히 율동감이 넘쳐 보여요. 그 이유는 원안의 학은 위로, 원밖에 학은 아래로 엇갈리게 그려 시선을 아래위로 두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높이 42.1cm, 입지름 6.2cm, 배지름 24.5cm, 밑지름이 17cm인 이 병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작품이에요. 현재 국보 제68호로 지정돼 있어요.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
(국보 제68호)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이 병은 배 부분이 납작하여 부피가 줄어들었지만 투박한 그릇 모양과 물고기, 모란무늬를 시원스럽게 표현하여 재치 있고 희망에 차 있는 청년을 보는 듯하지 않나요? 이 분청사기는 그릇표면에 흰 흙을 두텁게 칠한 다음 그 위에 물고기와 꽃을 선으로 새겼어요. 이런 그릇을 조화분청사기라고 해요.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은 조선시대의 분청사기로 높이 22.6cm, 입지름 4.5cm, 밑지름 8.7cm예요. 국보 제178호로 지정돼 있지요.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국보 제178호)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

높이 41.3cm, 입지름 19cm, 밑지름 21.5cm인 조선시대 백자 항아리입니다. 국보 제166호로 지정돼 있어요. 이 항아리는 경사진 목 부분에서 어깨로 풍만하게 벌어졌다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넉넉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마치 마음이 후덕한 선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요? 몸체의 한 면에는 대나무를, 다른 한 면에는 매화등걸을 그렸는데 한 폭의 그림을 그린 듯 한 수법이 아주 뛰어난 작품이에요. 이런 형태는 16세기 조선 백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도자기의 그림이 흑색과 흑갈색을 띠고 있는데, 그것은 철에서 피어난 녹을 주성분으로 하는 붉은색 흙을 붓으로 찍어 그렸기 때문이에요. 이런 그릇을 철화백자라고 해요.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
(국보 제166호)

토기, 자기, 분청사기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토기는 질그릇(도기)의 일종이고 청자·백자·분청사기는 자기를 말하죠. 토기는 500℃∼800℃의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구운 그릇을 말하는데, 그릇의 표면에는 우리들 집에서 사용하는 그릇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질막이 없답니다. 자기는 1,300℃ 전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낸 그릇이지요. 그릇이 단단할 뿐 아니라, 표면에 반짝이는 유리질막이 있어요. 청색의 유약을 입히면 청자, 백색의 유약을 입힌 것을 백자라고 하지요. 청자보다는 백자를 만드는 흙의 순도가 높고 굽는 온도도 높아요. 청자는 1,280℃에서 구워지고 백자는 보통 1,300℃에서 구워져요. 분청사기는 청자에다 백토를 발라 구운 것이지요. 우린 흔히 사기는 왠지 자기보다 질이 떨어지고 굽는 온도도 낮은 그릇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사기라는 말은 자기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에요. 분청사기는 결코 청자나 백자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우리 도자기예요.


왜 도자기의 색이 다르게 나타나나요?

도자기의 색은 그릇을 구울 때 산소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흙과 유약(잿물)에 철분이 얼마나 포함되었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도자기를 구울 때 산소가 많이 공급[산화번조酸化燔造]되면 흙이나 유약 내 철분이 모두 산화되고 녹슬어 산화제이철이 되지요. 그러면 그릇은 갈색을 띠게 되요. 빗살무늬토기는 땅에 구덩이를 파고 별 특별한 장치 없이 장작불로 구운 그릇이니까 갈색이나 흑갈색을 띠게 되는 거예요. 빗살무늬토기를 굽던 솜씨는 거듭 발전해 원삼국시대에 가면 산소가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버린 밀폐된 가마를 이용해 높은 온도로 구울 수 있는 기술로 축적되지요. 밀폐된 가마는 도자기를 구울 때 산소를 차단하게 돼요. 이런 방식을 환원번조(還元燔造)라고 하는데 청자와 백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렇다면 시대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도자기의 색은 무엇 때문일까요? 조선시대 사람들이 청자의 푸른색을 좋아했다면 백자가 아니라 청자가 계속 만들어졌을 텐데, 그렇다면 고려시대 사람들에게 푸른색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왜 조선시대 사람들은 흰 그릇을 선호했을까요?
고려청자의 빛깔은 꿈결 같은 아득함, 끝없이 펼쳐진 세계를 생각나게 하지요. 고려청자가 보여 주는 세계는 고려시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불교 세계 그 자체였어요.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위하여 진리에 따라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었어요. 불교의 가르침은 고려시대 사람들을 현실의 세계보다는 다음 세계를 꿈꾸게 했어요.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한 기쁨이 있는 미래의 세계가 바로 청자가 보여주는 무한의 세계라고 본 것이지요. 조선시대의 벼슬이 높은 사대부들은 흰 백자를 좋아했어요. 흰색은 순결함과 검소함을 상징하지요. 이것은 그들이 추구하는 성리학의 세계와 일치하고 있어요. 성리학이란 무엇보다도 검소하고 질박한 것을 생활의 가르침으로 추구하고 동시에 지상의 삶에서 모든 것을 구하는 것이에요. 그러한 가치관을 추구한 사대부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검소·질박·결백함이지요. 조선시대에 백자가 유행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벼슬 높은 사대부들이 흰색을 좋아한 것과 관련 있어요.


각 시대의 사상을 나타내는 도자기의 무늬

빗살무늬토기의 빗살무늬는 강렬한 햇살이나 물고기의 뼈 모양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고 그 외 여러 현상을 추상화하여 표현한 것이에요.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토기에 그런 무늬를 새기면서 곡식이 잘 자라기를 바라고 물고기가 많이 잡히기를 기원했어요. 왜 이런 것들을 그릇에 표현했을까요?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는 단순히 그릇의 개념만이 아니라 주술적인 개념도 갖고 있어요.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에 보이는 학과 구름의 그림을 일컬어 운학무늬라 합니다. 학 자체가 신성한 동물이라는 점에서 자주 이용하였을 뿐 아니라, 푸른 그릇 표면을 하늘로 생각했어요. 청자의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학과 구름은 고려시대 사람들이 바라는 영원한 세계를 그릇 위에 그린 것이에요. 운학무늬가 가지는 성격은 청자의 푸른 빛깔의 성격, 즉 고려시대 사람들 마음 구석구석까지 파고든 불교 사상에서 나온 것이에요. 불교를 나타내는 또 다른 문양은 바로 연꽃잎무늬예요. 청자상감운학문매병뿐만 아니라 고려청자의 많은 경우에서 연꽃잎무늬가 깔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고려인들은 진흙탕 속에서 피어오르는 연꽃이야말로 불교의 가르침이라 생각했어요. 연꽃잎무늬는 초기부터 후기까지 고려청자의 주소재가 되었어요.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의 물고기문양은 아주 특이하지요? 물고기와 모란을 표현한 간략한 선은 너무나 자유롭고 거꾸로 선 물고기 모습은 해학적이어서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절로 나올 정도예요. 물고기와 모란 문양은 분청사기에서 많이 나와요. 대개 물고기는 처음에는 연잎과 연못 속의 물고기로 나타나는데 그러다가 차차 연꽃과 물고기가 나오고 다음에는 분청사기조화어문편병처럼 물고기만 등장하게 되지요. 모란 잎은 간략하고 대범하게 표현됐어요. 물고기는 보통 다산(아이를 많이 낳는 것)을 상징하고 모란은 부귀와 번창을 의미해요. 고려시대 사람들이 미래 세계를 중시했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현실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청자의 문양이 푸른색 바탕 위에서 그 뜻이 살아나듯이 백자의 문양은 흰색 바탕에서 살아나요. 흰색은 순수하고 결백함을 상징하는 색으로 조선의 사대부들이 선호하던 색이었어요. 흰색은 유학이라고 하는 성리학적 세계와 잘 어울렸어요.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에서 보이는 대나무와 매화는 난초, 국화와 함께 사군자로 불려요. 조선 초기 사대부들이 선비의 정신을 상징하는 소재로 즐겨 그렸지요. 백자 철화매죽문 항아리의 대나무는 몰골(沒骨)이라는 기법으로 그렸는데 고도로 전문화된 매우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어요. 다른 면에는 아랫부분에 문양이 치우치는데 굵은 매화 등걸이 굽이치는 가운데 옆으로 가는 곁가지가 솟아나 있어요. 이러한 문양들은 당시의 회화작품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소재들이죠. 조선후기로 넘어가면 그릇의 문양으로 십장생, 또는 까치와 호랑이 등의 민화가 그려지는데 이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 높아지고 잘 살게 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되었기 때문이에요.


상감기법이란 어떤 것일까요?

상감이란 무늬를 넣는 방법을 말해요. 초벌구이한 그릇 표면에 원하는 무늬를 새깁니다. 그리고 흰색의 흙(백토)이나 붉은색의 흙(자토)을 그 홈에 메우지요. 다 메운 후 그릇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유약을 발라 구우면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색으로 나타나게 돼요. 생각보다 간단하죠? 상감이라는 기법은 이미 중국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금속공예에 사용되던 방법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어왔던 수법이지요.
그렇다면 상감이라는 기법이 특별한 기술도 아닌데 왜 상감청자가 유명할까요? 그건 도자기에 상감기법을 응용해 만들어 냈다는 데 있어요. 상감청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기법이에요. 그러나 진짜 상감청자가 위대한 이유는 그런 뛰어난 착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한낱 그릇에 불과한 청자가 수백 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꿈과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