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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2.금강산을 그려볼까요?(정선필 금강전도, 정선필 인왕제색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을 꼽으라면 누구나가 금강산을 꼽을 것입니다. 그리고 5백년 도읍지였던 한양에서 멋스러운 산을 꼽으라면 인왕산을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 멋진 산의 300년 전의 모습을 조선 시대의 뛰어난 화가인 겸재 정선(1676년∼1759년)이 그린 그림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가 그것입니다. 말 그대로 ‘금강전도’는 금강산의 전경을 그린 것이고 ‘인왕제색도’는 비온 뒤 구름이 거쳐 가는 인왕산을 그린 거예요. 이 두 그림은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실제의 경치를 꼭 그대로 그린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정선은 방안에 앉아서 상상으로 경치를 그리지 않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계절과 날씨에 따라서 변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나타냈어요. 실제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그린 것이지요. 이것을 ‘진경산수화’라고 하는데, 특히 정선이 크게 유행시켰어요.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그린다는 것이 지금은 자연스럽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럼 정선 이전의 사람들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요? 머릿속으로 상상한 산수화를 그리거나 중국의 유명한 시 구절 속에 나타난 풍경을 그렸어요. 또는 옛날 중국의 유명한 그림을 그대로 따라 그렸어요. 이런 그림을 ‘관념산수화’라고 하지요. ‘관념산수화’가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도 그 속에 담겨 있는 풍경은 우리나라 것이 아니라 중국 것이었어요. 가보지도 못한 중국산을 그리워하며 그림으로 남겨봤자 무슨 소용이 있었겠어요? 이제부터는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해요.

정선필 금강전도
"금강전도"는 정선이 쉰여덟 살 때인 1734년 겨울에 내금강의 전체 모습을 만폭동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국보 제217호인 이 그림은 세로 130.7cm, 가로 59cm 크기이며, 먹으로 그림을 그리고 연하게 색깔을 칠한 수묵담채화예요.


정선은 얼마 전에 보았던 눈 덮인 금강산을 머리에 떠올리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동그랗게 원형으로 구도를 잡아 봉우리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렸어요. 날카롭게 솟아오른 봉우리는 수직으로 죽죽 내려 그었어요. 이렇게 그리는 방법을 수직준법이라고 하지요. 봉우리 사이사이에는 크기가 다른 여러 점들을 찍어서 소나무와 흙으로 된 산을 나타냈어요. 맨 꼭대기에 있는 비로봉은 피마준법으로 그렸어요. 피마준법이란 ‘마’라고 하는 천의 올이 흐트러지듯이 부드럽게 그리는 화법을 말하지요. 산 둘레에는 엷은 푸른색으로 문질러 둥근 형태를 강조하면서 하늘 높이 솟는 느낌을 나타냈어요.
정선필 금강전도
(국보 제217호)

정선필 인왕제색도
정선필 육상묘도(보물 제873호)
정선필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인왕제색도>는 <금강전도>와 함께 조선 중기 정선이 그린 진경산수화 중에서 제일 뛰어난 작품이에요. 국보 제216호로 그 크기는 세로 79.2cm, 가로 138.2cm이며 종이에 먹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정선은 한양에 있는 인왕산 근처에서 살았어요. 1751년 정선이 일흔여섯 살 때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하더니 갑자기 장대 같은 소나기가 퍼부었어요. 한참을 퍼부은 뒤 어느덧 빗줄기가 점점 가늘어지고 먹구름도 가시더니 인왕산에도 비가 개기 시작했어요. 비를 흠뻑 먹은 인왕산 화강암 봉우리는 평상시보다 더 짙어 보이고 소나무의 짙푸른 초록색은 더욱 싱그러워 보였어요. 더구나 길게 띠를 이루면서 자욱이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점점 위로 번져나가고 있었어요. 정선은 이 장면을 놓칠세라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어요. 먹물 가득 묻힌 큰 붓을 뉘여서 북북 그어 내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여러 번 덧칠했지요. 이렇게 먹을 자꾸만 여러 번 칠해서 독특한 맛을 내는 것을 적묵법이라고 해요. 무엇을 그린 것일까요? 바로 깎아지른 듯이 높고 커다란 바위였어요. 흰 바위를 거꾸로 검푸르게 나타내고 물안개와 소나무를 희게 그리니까 비개인 인왕산 모습이 더욱 선명해 보였어요. 같은 인왕산을 그렸어도 강희언(1738년∼1782년)이 그린 <인왕산도>는 정선 그림과 아주 달라요. 정선이 인왕산을 그 특징만을 살려서 과감하면서도 장엄하게 표현했다면, 강희언은 인왕산의 모습을 보이는 그대로 드러내어 골짝, 성곽, 마을까지 자세히 그렸어요. 마치 ‘인왕산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는 듯 하지요.


우리나라 그림에서 여백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정선의 그림을 얼핏 봐서는 그림을 그리다 만 것처럼 보이죠? 요즘은 화면을 꽉 채워서 색칠하기 때문에 옛날 그림을 보면 이해하기가 힘들 거예요. 옛날 사람들은 꽉 찬 곳이 있으면 빈 곳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빈 곳을 여백이라고 하는데 꽉 찬 먹색과 흰 공간인 여백에서 우리는 음과 양의 조화를 볼 수 있어요. 옛날 사람들은 선만으로도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빈 공간을 그냥 두어서 여백의 미를 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