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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11.낯선 풍경, 뾰족지붕과 벽돌문(서울 명동성당, 서울 독립문)
개항(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외국문화가 들어왔던 시기) 이후 외국인이 들어와서 언덕 위에 서양 집을 지었을 때 서로 다른 문화를 접하면서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오히려 프랑스나 러시아 공사관처럼 크게 지어서 위세를 드러냈어요. 이렇게 건축물을 보면 그때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요. 개항 이후 들어온 외국인의 우리 문화에 대한 태도를 명동성당과 독립문을 통해 알아봐요.

서울 명동성당과 서울 독립문
서울 명동성당(사적 제258호)
서울 독립문(사적 제32호)
서울 명동성당은 사적 제258호로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에 있어요. 프랑스 신부들에 의해 1892∼1898년에 지어졌어요. 전체길이 약 68m, 너비 29m, 높이 23m에 종탑 높이는 약 47m이며 건축 면적이 427평이죠. 여기서 보면 종탑 높이가 건물 높이의 2배 정도 되죠? 참 높은데 왜 이렇게 높게 지었을까요? 그건 신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려고 그런 것이에요. 하늘에 있는 신을 향한 마음으로 수직의 뾰족하고 높은 탑·지붕을 짓고 뾰족한 아치형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로 빛이 들어오게 하죠. 그럼 높은 상승감과 빛과 우아함에 끌려 몸이 가벼워지고 위로 올라가는 신비감이 느껴지는데 이렇게 지은 건축 양식을 고딕양식이라고 해요.

서울 독립문은 사적 제32호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어요. 1896년 11월 21일 주춧돌을 놓는 정초식을 하고 1897년 11월 20일에 완공했어요. 그럼 왜 독립문을 세웠을까요? 갑오경장 이후 자주독립을 다짐하기 위해 세운 거예요. 누가 세웠을까요? 독립협회죠. 또 다른 의견으로 정부가 세계 만국에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표시를 보이려고 도시개조사업으로 진행한 거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그럼 어떻게 만들었을까요? 벽돌을 쌓아서 만든 조적식 문으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해서 만든 거예요. 우리의 전통 기와지붕 문하고는 참 다른 모습이죠!

영은문은 철폐하고 독립문을 세웠다구요?
영은문(迎恩門)은 이름에서 보이듯이 은혜를 맞이하는 문이란 뜻으로, 조선시대에 중국사신을 맞이하는 문이었어요. 이렇게 중국을 받드는 것을 사대주의라고 하는데 그것을 없애고 새로이 그곳에 독립문을 세웠어요. 독립문은 갑오경장 이후 중국, 일본 등의 나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고 애국심을 높이며 그것을 외국인들에게 당당히 보여주기 위해 건축되었어요. 그럼 영은문과 독립문의 생김새는 어땠을까요? 영은문은 주춧돌을 세우고 그 위에 기와지붕을 얹어 만든 전통문이에요. 이 영은문의 주춧돌은 사적 제33호로 독립문 앞에 남아 있어요. 독립문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조적식 돌문 모습을 한 서양문이에요. 그런데 왜 독립문이 우리 전통 문들과 다르게 이런 서양문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독립문이 세워질 무렵 한창 서양문물이 많이 들어올 때였어요. 그때 사람들은 서양문물을 적극 수용했고 그래서 독립문도 서양문 모습으로 지었어요. 우리의 독립을 선언하는 문을 서양 건축 양식으로 지었던 거지요.

기와지붕 성당
주위에서 보이는 성당이나 교회가 어떤 모습인가요? 대부분의 성당이나 교회가 뾰족지붕이지만 기와지붕을 한 성공회성당도 있어요.
영국에서 탄생한 성공회는 1889년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리고 교리를 전파하고 성당을 세웠어요. 우리나라 건물의 특징을 의식하여 겉모양은 절이나 한옥건물 양식으로 지었어요. 측문이 있는 것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 한옥건물을 살리면서 안은 서양의 바실리카 양식으로 지었어요.

  바실리카 양식은 건물 중앙에 앉는 좌석이 있고 양옆으로 기둥이 늘어선 복도가 있고 앞에 설교하는 공간이 있는 교회 건축양식을 말해요. 겉은 한옥으로, 안은 서양 교회 건물양식으로 지은 거죠.
성공회 서울성당
(서울특별시 시도유형문화재 제35호)
성공회성당은 명동성당처럼 원래 서양의 성당 건축양식 그대로 지은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를 의식하면서 지은 성당이에요. 우리나라에 자신들의 문화를 전파하려면 우리 전통 문화를 함께 수용해야 더욱 쉽게 동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런 노력이 필요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