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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10.옛선인들의 집(강릉 오죽헌)
현장학습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옛날 기와집에 가 보셨지요? 그 곳에 가면 무엇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아마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 맞배지붕, 우진각이니 하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그 집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나요? 집을 잘 이해하려면 ‘누가 언제부터 살았을까?’, ‘살던 사람은 무슨 일을 했을까?’, ‘집에 얽힌 이야기는 없을까?’, ‘집의 구조는 왜 이렇게 하였을까’를 따져보면서 이야기하면 훨씬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갈 수 있는 집은 많지만, 그 중에서 오죽헌을 통해서 옛날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봐요.

강릉 오죽헌
강릉에 가면 오죽헌이라는 기와집이 있어요. 이 집은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으로 유명해요. 우리나라 주택 건축 중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면서 조선 중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어요.
건축 구조를 자세히 보세요. 집의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 칸이라고 하는데, 기둥이 4개 있어요. 따라서 정면 3칸이지요. 측면은 기둥이 3개 있어 2칸으로 모두 6칸으로 된 일자형 집이에요. 왼쪽의 4칸은 대청이고, 오른쪽의 1칸 반은 온돌방이에요. 방 뒤에 반 칸은 툇마루고요.
그런데, 부엌이 없네요. 밥은 어디서 해 먹었을까요?
강릉 오죽헌
(보물 제165호)
오죽헌은 시집간 딸이 친정에서 살 수 있게 만든 별당이었으니까 안채에 가서 먹었겠지요.
‘서방님’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별당을 ‘서옥’이라 부른데서 생겨났어요.
율곡은 몽룡실에서 태어났고, 6살까지 살았어요. 어떻게 살았을까요? 여름에는 대청이나 마당, 뒷마당에 있는 대나무밭에서 , 겨울에는 몽룡실에서 놀았을거예요. 이렇게 오죽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면, 당시 사람들의 생활사, 가족 제도, 사회 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옛 사람들의 이름
오죽헌은 이율곡의 외사촌 권처균의 호에서 유래했어요. 집 주위에 오죽(검은 대나무)이 많아서 ‘오죽헌’이라 했던 거예요.
어릴 때 이름은 ‘아명’이라고 했고, 이 이름은 아버지, 스승, 임금만이 부를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이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을 모욕한 것으로 생각했어요. 성인식을 하고 나서는 ‘자’를 붙였어요. 그런데 이 ‘자’도 윗사람이나 친구 정도가 부를 수 있었어요.
이와 달리, 누구나가 쉽게 부를 수 있게 붙인 이름이 ‘호’예요. 호는 그 사람과 관련이 있는 장소에 붙이는 것, 자기 주위에 있는 사물,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뜻으로 정했어요. 호는 한 사람이 여러 개를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오죽헌은 권처균의 호를 집에다 붙인 것인데 이런 것을 ‘당호’라 했어요.

오죽헌에 대나무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대나무는 원래 따뜻한 곳에 사는 식물로, 강릉과 같은 위도의 서부지역은 대나무를 볼 수 없어요. 그런데도 대나무가 있는 것은 따뜻한 난류가 흐르는 동해와 태평양의 영향을 받아 해양성 기후를 띠기 때문이에요. 같은 위도에서 중국 대륙의 영향을 받는 서해보다 따뜻하지요. 오죽헌에서 기후 공부도 해보세요.

강릉 오죽헌의 특이한 역사
지금은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집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조선시대 중기까지도 남편이 아내 집에서 아이가 클 때까지 사는 것은 흔한 일이었어요. 만약 아들이 없으면 사위나 외손자가 제사를 지내는 외손봉사도 이상한 것이 아니었어요. 재산도 아들과 딸에게 똑같이 분배했고요.
오죽헌은 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 이사온이 살았던 집이었지요. 사임당의 아버지는 사위와 딸이 결혼 후에도 자기 집에서 같이 살 것을 요구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원래는 외할아버지 이사온의 장인 최응현의 집이었지요. 그러니까 오죽헌도 장인이 사위에게 물려준 집이예요. 그리고 원래는 외할아버지 이사온의 장인 최응현의 집이었지요. 임진왜란 이후는 주자학의 영향으로 아들이 없으면, 양자를 삼아서라도 아들을 가문의 계승자로 삼았어요. 그 결과 아버지가 아들에게 상속하는 지금의 가족제도가 정착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