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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8.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은 법주사 팔상전,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3학년 사회책을 보면 ‘향교’에 대한 부분과 5학년의 조선시대 교육기관에 대해 나오는데 지역마다 서원과 향교가 한 두 곳쯤은 다 있으니까, 직접 찾아가 보세요. 성균관, 향교, 서원을 어떻게 관련지어야 할지 몰라 책만 읽고 지나치진 않으셨어요? ‘저 건물은 뭐하는 거지?’ ‘뒤쪽으론 뭐가 있을까?’ ‘학생 수는 얼마나 될까?’ ‘이 학교에서 특색 있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일까?’ ‘학교 역사가 얼마나 될까?’ 이런 질문을 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옛날 학교와 지금 학교가 어떻게 다른지, 사회 운영 원리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고, 역사를 보는 깊은 안목이 생길 거예요.
옛날 학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향교는 관학이라서 관아에서 감독을 해야 하고 행사가 꾸준히 이루어지므로, 읍성 안쪽이나 읍성 가까이 세웠어요. 그러나 서원은 일반적으로 산수가 뛰어나고 조용한 산기슭이나 향촌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선비들이 공부하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았고 받들어 모실 선현의 연고가 있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지요. 건물도 절집 같은 화려함이 없고, 주위의 자연과 어울리게 만들었어요. 서원은 검소한 생활환경을 중시한 조선조 선비들의 가치관이 잘 나타나서 전형적인 유교 건물의 모습을 볼 수 있어요.
또 오늘날 학교는 커다란 운동장과 기다란 2,3층 건물이 특징이지요? 옛날엔 어땠을까요? 성균관, 향교, 서원은 그 구조가 비슷해요. 학교 안에 제사지내는 사당(또는 대성전)과 강당, 그리고 기숙사가 있는 것이 특이해요. 옛날 학교는 유교 이념을 가르치는 배움터인 동시에 공자와 중국 성현 그리고 우리나라 선현을 모시고 제사지내는 곳이기도 했어요.
건물도 각각 기능이 다른데, 중요한 몇 가지 건물은,
*대성전(서원의 사당) - 공자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 지내는 곳
*동무, 서무 - 대성전 앞쪽에 배치. 중국 성현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
*명륜당 - 강당이면서 교실.
*동재, 서재 - 명륜당 앞쪽 좌우에 있는 건물로 학생들의 기숙사. 그 외에 휴식공간, 책을 찍어
   내거나 보관하는 곳, 제기를 보관하는 곳 등이 있었어요.

서울 문묘와 성균관
서울 창덕궁 동쪽으로 가면 명륜동에 성균관대학교가 있어요.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성균관이에요. 성균관은 고려와 조선시대 최고 학교로, 지금으로 본다면 서울에 있는 국립 대학교라고 할 수 있어요. 1398년(태조 7년)에 새 도읍 한양(지금의 서울)을 건설하면서,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지요.
성균관에서는 음력 2월과 8월에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석전대제(釋奠大祭)’라고 해요. 그리고 석전에 쓰이는 음악을 ‘문묘제례악’이라고 하는데, 문묘제례악과 그 의식을 보존하기 위해서 석전대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서울 문묘와 성균관
(사적 제143호)
성균관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다시 지은 거예요. 지금은 문묘(대성전) 일원이 사적 제143호로 지정돼 있어요.

장수향교 대성전
관학(국가에서 세운 학교)으로 서울에 성균관이 있었다면, 지방엔 향교가 있었어요. 전북 장수읍 선창리 당곡 마을에 가면, 장안 산과 팔공산으로 에워싸인 곳에 장수향교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자리 잡고 있어요. 가장 바깥에 있는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오른쪽에 있고, 그 뒤로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있어요. 뒤쪽으로 담장이 둘러쳐진 내삼문이 있고, 내삼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이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요. 장수향교 대성전은 보물 제272호로 지정되어 있어요. 장수향교는 함흥향교와 더불어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은 건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장수향교 대성전
(보물 제272호)
고려와 조선의 역대 왕들은 정치이념인 유교를 지방에까지 확대하기 위해, 각 군현에 향교를 세웠어요. 마치 지금의 학교가 면단위까지 퍼져 있고, 교육과정이 국가수준인 것과 같은 원리겠지요? 향교는 지금의 국립 중·고등학교로 지방의 교육·문화를 지배했고, 사상의 중심적 역할을 했 어요. 지금도 남한에 231개가 남아 있어요.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서원은 지금의 사립 중·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 중기 지방에서 사설 학교인 서원이 처음 생겨났어요. 최초의 서원은 소수서원이고, 한때는 650여 개까지 설립되었어요. 조선 말기에 흥선대원군이 왕권 정비를 위해 47개만 남기고 철거하였지만, 그 뒤에 옛 전통을 살려 재건하여 오늘날 수도 없는 서원들이 각 지역에 있게 되었지요. 도산서원을 비롯해 옥산서원, 무성서원, 필암서원, 병산서원, 돈암서원이 사적으로 등록돼 있고, 달성 도동서원 중정당ㆍ사당ㆍ담장이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었어요.
이러한 서원중에서 안동에 있는 도산서원을 알아볼까요?
도산서원은 안동시에서 동북쪽으로 28㎞ 쯤 가면 토계동에 있어요.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보물 제210호)
도산서원은 한국 유학사에서 큰 별이라 할 수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을 모신 곳이죠. 도산서원이 있기 전에는 도산서당이라 해서 퇴계 선생이 생활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기도 해요.
퇴계 선생이 돌아가신 후 그를 흠모하던 제자들과 고을 선비들이 사당을 세워 그를 받들어 모심으로써 서원으로 모습을 갖추게 되었어요. 그 뒤 강당인 전교당과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증축해서 이듬해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받으며 국가에서 인정받았어요.
안동 도산서원은 사적 제170호로 지정되어 있고, 도산서원의 중심 영역인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은 보물 제210호로 지정돼 있어요.

학생들은 수업료를 냈을까요?
성균관과 향교 학생들은 기숙생활을 했어요. 그러면서도 수업료를 내지 않았고 음식과 학용품 등의 교육비를 모두 지급 받았어요. 이런 비용은 국가에서 학교로 내려준 토지와 노비의 몸값으로 충당했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운영의 책임이 있는 지방수령이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했고, 일부는 향교마을을 지정해서 부역으로 도움을 주게 했어요. 또 부역을 면제해주는 대신 공물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서원은 대부분 제자들이나 후손들이 설립한 사학이므로, 원칙적으로 국가 차원의 재정지원이 없었어요. 국가에서 공식 인정된 서원(사액서원)의 경우에는 약간의 토지가 지급되었지만, 매우 적었기 때문에 지방 유림의 힘을 모아 운영비를 마련한 것이 일반적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