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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8.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익산 미륵사지 석탑, 보은 법주사 팔상전,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우리나라는 왜 석탑이 많을까요? 석탑만 만들었기 때문일까요? 예전엔 목탑도 만들고 석탑도 만들었어요. 여러분들도 잘 아는 경주 황룡사 9층 목탑(신라), 부여 군수리 사지의 목탑(백제), 평양 청암리 사지의 목탑(고구려) 등 각 시대마다 목탑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네요.
그러면 그 많았던 목탑들이 어디로 갔을까요? 주변 나라의 잦은 침입으로 불에 타버린 거죠. 목탑과 함께 석탑을 만들던 시대에도 지금의 석탑과 같은 양식으로 만들었을까요? 어느 것이든 변화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석탑양식도 그랬대요. 어떻게 변해 왔을까 궁금하지요?

닮은 점을 찾아보세요
다음 4기의 탑을 자세히 비교해 보고, 법주사 팔상전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석탑부터 순서를 잡아보세요. 그리고 세워진 지역에 따라 탑이 주는 느낌 차이도 이야기해 보세요. 처음 탑은 국보 제55호인 보은 법주사 팔상전이예요. 조선시대 후기인 17세기 초반의 탑입니다. 마치 5층 집 같다고요? 그래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목탑 중 하나인데 집과 같아요.
두 번째 탑은 돌을 이용하여 목탑을 짓듯 쌓아 올린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죠.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탑이며 국보 제11호로 전라북도 익산에 있어요.
세 번째 탑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입니다. 국보 제9호로 7세기 초반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마지막 탑은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이죠. 통일신라시대 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는데 문무대왕이 왜병을 물리치고자 세운 감은사 옛터에 동, 서 쌍탑으로 남아 있어요.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은 국보 제112호예요.
보은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 11호)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112호)

목탑과 석탑의 차이

법주사 팔상전과 감은사 탑의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목탑인 팔상전은 기둥에 창방, 평방, 공포 등 목조건축물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요. 그러나 감은사 탑은 건축이라기보다는 조각품이에요. 이렇게 목탑과 석탑은 한 눈에 보기에도 달라요. 목탑에서 석탑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있었다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 살펴봅시다.

법주사 팔상전을 먼저 살펴볼까요? 5층집 같다고 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1층에만 들어갈 수 있고 건물 안에서 보면 5층까지 뚫려 있어요. 천장 높은 집이죠.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갈 수도 있는 건축물이에요. 집을 지을 땐 어떻게 지을까요? 땅을 다진 뒤 축대를 쌓죠. 물론 사람이 올라가 신발을 벗어야 하니까 낮고도 올라가기 쉽게 만들어요.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가로질러 창방(기둥머리와 기둥머리를 연결하는 나무), 평방(창방 위에 얹는 나무)을 얹고, 그 위에 공포(지붕을 들어주는 역할)를 올려 지붕을 날아갈 듯이 마무리해요. 지붕의 처마 길이가 짧으면 멋이 없고 또 처마 선은 축대(기단) 바깥까지 벗어나야겠죠? 비바람이 들이치는 걸 막아줘야 하니까요.
이러한 목조 건축과 비교해서 미륵사지 석탑을 볼까요? 탑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각 면마다 작은 문들이 있어요. 문은 안에서 서로 통한대요. 기둥도 세웠지요? 기둥은 위쪽이 좁고 배 부분부터 부풀어 내려오는 배 흘림 기법으로 멋을 냈고요. 기둥 위에 판판한 돌을 겹쳐 얹어 평방과 창방의 흉내를 냈어요. 기단은 처마선 안에 자리하면서 낮은 단층기단이에요. 모든 부분에서 목조탑을 흉내 내려고 애썼답니다.

감은사 탑에서는 미륵사지 탑에서 보았던 문은 보이질 않아요. 대신 기단이 2층 기단으로 바뀌었고 높이도 꽤 높아졌어요. 기단에 비해 처마 선은 짧아지고 기단이 넓고 높아져 상승감에 안정감을 더해줘요. 이젠 탑이 건축물로서보다는 기념물, 상징물로 자리하게 된 거죠.
그런데 아직도 각 부분이 한 개의 돌로 조각된 것이 아니라 수십 개의 부분 돌을 조각해 조립했어요. 몸돌(면석)과 기둥돌(각주, 탱주)들이 떨어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지붕돌(옥개석)도 받침돌과 서로 다른 돌에 조각해 각 층의 지붕만 해도 무려 8덩이의 돌로 조립되었어요. 감은사 탑에 숨어있는 목탑 양식이라고 할까요?
그러면, 석탑의 아름다움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목탑이 나무가 가진 좋은 점을 살려 서로 어긋나지 않게 짜 맞춘 형태라면, 석탑도 돌의 좋은 점을 잘 살려야겠죠? 돌은 덩어리가 주는 단단함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요. 석탑은 돌의 좋은 점에 약간의 인공적인 멋을 가할 때 아름답죠. 이쯤하면 목탑과 석탑의 차이를 비교하는 안목이 생겼겠죠? 우리 지역의 탑에도 목탑 양식이 남아있는지 잘 살펴보세요.


백제와 신라의 아름다움을 비교해 보세요.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을 보면 어떤 사람이 생각나나요? 훤칠한 키에 당당한 어깨, 단정한 몸가짐에 지적이고 우아함이 물씬 풍겨 나오는 그런 사람이 생각나지 않나요? 따뜻하고 온화한 미소를 던지며 다가올 것 같아요.
감은사 석탑은 어떤 사람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굳세게 자신의 주장을 펼칠 것 같은, 듬직한 사람을 보는 듯해요. 지붕돌에서 모서리선의 표현 하나만 비교해도 백제인과 신라인의 미감을 알 수 있죠.
정림사지 탑은 얇은 지붕돌의 모서리선(우동)이 내려오다 끝에서 10분의 1쯤 남겨진 지점(전각)을 가볍게 올렸어요. 하지만 감은사 탑의 표현은 달라요. 처마 선은 일직선인데 지붕돌의 모서리선이 내려오면서 점차 두툼해져 마치 위로 솟은 듯이 보이게 해요.
그러면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지리적,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 문화에 드러나는 거죠. 백제가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세워졌다면 신라는 지금의 경상도를 중심으로 세워졌던 고대 국가죠. 그래서 두 지역은 말씨에서부터 아리랑, 불상, 장승 등 모든 문화에 차이가 있죠. 우선 전라도는 넓은 평야가 많아 먹을거리가 풍부하죠.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도 여유가 있어요. 평야가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산이 적죠. 산줄기의 끝자락이라 산인지 구릉인지도 모를 낮은 산들 뿐이죠. 전라도 말씨나 진도 아리랑을 들어보면 낮은 산을 넘어간다는 느낌이 들어요.
경상도 지방은 앞은 거대한 백두대간이 가로막고 있고 뒤는 넓고 깊은 바다와 싸워야 해요. 그래서 사람들의 성격도 투박하고 거칠 수밖에 없죠. 그런 지리적 조건이 말씨를 비롯해 아리랑이나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거예요. 다른 지역도 물론 마찬가지구요. 이렇게 지역의 특성을 알면 그 지역을 이해하듯이 인간관계도 그렇게 풀어나갈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