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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문화재
2.서울 성곽과 사대문(서울 숭례문, 서울 흥인지문)
 
성곽이란 무엇인가요?
성(城)은 적들이 쳐들어오거나 자연 재해로부터 성안의 사람들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통 성벽을 말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성을 쌓았을까요? 처음에는 흙을 파서 도랑을 만들거나 흙으로 쌓았으나, 점차 성을 쌓는 기술이 발달하고 마을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무, 돌, 벽돌로 쌓은 것도 생겼습니다.
서울 한양도성
(사적 제10호)
서울에 왜 성을 쌓았을까요?
서울은 조선의 수도 한성부였어요. 이 안에 조선 정부의 중요 국가 시설이 있었고, 왕과 한양 백성들이 살았어요. 그리고 이 성벽 근처에 백성들의 집들이 있었고 집 근처에는 넓은 논과 밭이 펼쳐져 있었어요.

성을 어떻게 쌓았을까요?
서울 한양도성은 1396년부터 전국의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엄청난 고생 끝에 완성되었어요. 무려 118,070명이 동원되었죠. 그 이후 여러 차례 무너진 곳을 새로 쌓았답니다. 그런데 그 성벽의 바깥쪽에 보면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요. 왜 그럴까요? 여기를 누가 쌓았는지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어요. 아마 나중에 무너지면 책임지라는 의미였겠죠. 여러분도 한번 성벽 바깥쪽에서 사람들 이름을 찾아보세요.

서울 숭례문과 서울 흥인지문은 어떤 역할을 하였을까요?
서울 숭례문(국보 제1호)
서울 흥인지문(보물 제1호)
성문은 성의 안과 밖을 연결하는 통로로서 유사시 적의 공격을 막거나 공격하기도 하는 통로였어요. 그래서 성문은 통행이 편리한 곳에 만들어 놓아 쉽게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답니다.
서울 성곽에도 사람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남쪽의 서울 숭례문(남대문), 동쪽의 흥인지문(동대문), 서쪽의 돈의문(서대문), 북쪽의 숙정문 등 이렇게 사대문이 있었어요.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북문인 숙정문은 평상시에 닫아 두었었고, 새벽 4시에 종 33번을 치면 일제히 열고 저녁 10시에 종 28번이 울리면 일제히 닫혔죠. 하지만 전차가 다니면서 성벽이 헐리기 시작하였고, 이후 성문을 열고 닫던 것도 없어지고 말았어요. 나머지 성벽도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대부분 헐리어 오늘날의 모습으로 남았지요.

정문인 서울 숭례문을 찾아서
서울 성곽 중에서 서울 숭례문은 국보 제1호로서 서울 성곽의 남쪽에 위치하여 서울의 대문 구실을 한 문으로서 다른 문보다 더 크고 아름답습니다. 여러 차례 전쟁으로 인해 적의 공격이 있었지만, 다행히도 500여 년 동안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죠.
숭례문이라는 글씨는 다른 문과 달리 세로로 써 있는데, 이는 예를 숭상하는 문이란 뜻에서 공손한 자세를 나타내고 한편 서울의 남쪽에 있는 관악산의 나쁜 기운을 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전설도 있어요. 또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일본 황태자가 숭례문을 통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강제로 허물어 버리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남쪽 성벽을 부수고 새로 길을 내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어요.
오늘날 숭례문이 날개를 잃고 외로이 우뚝 솟은 이유를 여러분은 이제 알겠죠?

서울 흥인지문을 바라보며
서울 흥인지문은 서울 성곽의 동쪽에 위치한 문으로서 보물 제1호에요.
처음에 이 문을 만들 때 어려움이 많았어요. 이곳이 다른 지역보다 낮고, 성안의 물이 청계천을 통해서 내려가는 지점과 가까이 있어 더욱 만들기가 어려웠던 곳이죠. 그래서 낮은 지대라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글자 하나를 더 써넣어 다른 문과 다르게 4글자이지요.
흥인지문은 문 바깥쪽에 옹성(큰 성문을 엄호하려고 성문 밖에 반달 모양으로 쌓은 성)을 둘렀는데 이는 적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방어하고자 쌓은 것이고, 다른 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자, 이제 성벽을 더듬어 볼까요?
성벽으로 올라가면 옛 서울은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를 연결하여 서울 성곽이 만들어졌다는 것도 알게 되지요. 지금 서울을 바라보니 어떤 생각이 들어요? 숭례문과 흥인지문에 성벽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도로 때문에 끊겼어요. 현재 숭례문과 흥인지문의 보존 상태를 생각해보고,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 생각해 보세요.
서울 숭례문(국보 제1호)